실크;궤사 (詭絲;Silk, 2006) - 결국은 진검승부다

실크;궤사 (詭絲;Silk, 2006)
대만 SF/공포/스릴러 116분
감독 :수 차오핑
출연 :장첸, Chun-Ning Chang, 에구치 요스케, 임가흔, 서원희, 진백상

장르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는 영화다.
공포 영화는 본연의 임무(?)인 공포감에 치중해야 하고, 로맨스 영화는 사랑하고 싶다 라는 감정을 유발하는데 치중해야 하고...등등, 각 장르는 본연의 임무가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 건 그거다. 공포 영화의 범주에 들어가는 이 영화는 무엇에 치중하고 있나? 공포를 주려고 한다, 그러나 그 공포는 되는대로 죽어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럼 뭘 하고 있나? 결국 재미다. 그리고 이 재미를 무엇으로 구현하나? 결국 이야기이다. 허구라는 것을 알지만 말이 될법한 이야기. <실크; 궤사>는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한 한 판의 진검승부이다.

대만의 한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귀신이 나온다. 이를 연구하는 과학자 에쿠치 요스케(싫어하는 배우거덩)가    이끄는 팀 - 서희원, 진백상 등 대만 연구팀-은 독심력과 관찰력이 뛰어난 형사, 장진을 일본대사관의 힘을 빌어 자기들 팀에 끌어들인다. 장진은 식물인간이 상태의 어머니가 있고, 그 어머니는 오늘 내일 하고 있는 상태다.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임가흔이 있지만, 그는 임가흔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임가흔만이 계속 다가오려 하지만 장진은 계속해서 밀어낸다. 장진이 이 실험에 합류하고 이들은 귀신의 존재를 보게 된다(이걸 볼 수 있게 해주는 물질은 허구이나 영화에서는 있다고 전제하고) 꼬마 귀신은 우선 소리를 듣지 못하고 보는 건 가능하다. 매일 같은 시간이 되면 방을 나가려고 하지만, 이 꼬마를 보게 해준 물질이 밖에 뿌려져서 나가지 못한다. 독심술이 가능한 장진이 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말해준다. 그리고 점점 영화는 이 아이가 언제 사람을 죽이는가, 그리고 어떻게 죽이는가, 그리고 이 아이만 유독 죽지 않고 현재까지 혼으로 존재하며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을 얻는 에너지는 어디에 있는가 등등등등등.....................을 계속 추적한다.

이 모든 것은 참 재미있지만, 연결고리는 순간순간 투박하고 매끄럽지 않다. 그리고 별 끔찍한 장면도 없다, 아마 웃길 수-너무나 잔인하지 않아서-도 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끝까지 재밌을 수 있고, 죽음과 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것은 <실크; 궤사> 본연이 추구하고자 하는 지향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 보고 나서 아니 쟤는 왜 죽었지? 아니 그건 왜? 이런 의문에 사로잡혀도, 오랫만에 참 괜찮은 공포 영화를 보았다고 느끼게 된다. 이건 영상의 몫은 아니다, 한마디로 감독은 사람을 죽이거나 사람이 죽어가는 그 순간을 어떻게 시각화 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저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아니 저런 꼬마애가 왜? 왜 지 혼자 안죽고 혼이 됐는데? 왜 쟤는 실제하는 살아있는 인간을 죽일 힘을 가지고 있는데? 이 모든 의문을 풀어나가며 그 의문 위로, 지금 이 사건을 쫒는 인간들 자체가 가진 의문들-장진과 에쿠치 료스케 자신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의문-을 같이 풀어낸다.

이 모든게 좀더 매끄럽고 완숙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영화는 그렇지 못하다.
그런데도 나는 참 좋았다.
삶이란 뭐고
죽음이란 뭐고
왜 나는 죽음이란 내가 죽고 나서의, 내 의지가 들어갈 수 없는 다른 영역-알게 뭐야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등등을 한참 생각하게 해줬다.

참 ,
장진 괜찮았다. 그렇지만 남우주연상 후보에만 오르고 수상 못한건 이해가 가더라. 다른 무시무시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했다면 이런 정도로 표현되고 끝나지 않았을껄.
임가흔 괜찮더라. 저여자 누구야 이러면서 봤는데, 아호였나 전에 내가 리뷰 쓴 영화인데 제목도 까먹은 영화에 나온 사람이었다. 괜찮았다, 눈이 번쩍 뜨이게.
에쿠치 요스케는 그닥 좋아하는 이미지가 아니고, 이 영화에서 이미지가 좋은 역할이 아닌데도, 이렇게 뚜렷하게 각이해주고,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왜 그랬을까 그 정도로 힘들었을까, 내가 겪어보지 못한 삶이라는 게 이런걸까'를 느끼게 해줬다. 그래서 고마웠고, 또 이런 역을 그 정도의 스타가 선뜻 맡아준게 고마웠다. 그게 아무리 외국 시장을 노리고 어쩌고 했겠지 라는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음모론을 내세우며 들이댄다고 해도, 그는 충실했고 그게 나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