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성; 상처받은 도시 (傷城: Confession Of Pain, 2006) - 상처 입은 사람들
by 주렁주렁™2007. 3. 23.
상성 - 상처받은 도시 (傷城: Confession Of Pain, 2006) 감독 :유위강, 맥조휘 출연 :양조위, 금성무, 서기, 서정뢰, 두문택
* 이 리뷰에는 본 영화의 내용 노출이 있습니다.
<무간도>로 이름을 날린 유위강과 맥조휘가 만든 영화로, 이 <상성>에서도 살아 있지만 지옥에서 살아가는 두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경찰인 양조위와 금성무는 임무를 훌륭히 완수하고, 금성무는 애인이 기다리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침대에는 손목을 그은 피투성이의 애인이 있고 그는 병원에서 그녀가 며칠 전 인공중절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경찰일을 그만두고 술에 쩔어 살며 사립탐정이 된 금성무는, 애인이 죽기 전 3시간 동안 혼자서 있었다는 술집에 수시로 찾아가 도대체 그녀가 누구를 기다렸는지 알아보려 한다. 이제 경찰에서 지위가 오른 양조위는 서정뢰라는 여자와 결혼해 행복한 신혼생활을 만끽하는 동안, 장인과 장인의 부하들이 강도에 의해 살해된다. 이에 서정뢰가 금성무를 찾아가 부탁을 한다. "우리 아버지나 아저씨들은 절대 모르는 사람한테 문을 열지 않아요. 그 날 찾아온 사람은 분명 아버지가 아는 사람이었을 거에요."
사실 포스터나 예고편을 보면 대단한 반전이 있을 것 같지만 그건 아니고. 감독은 일찍부터 패를 내놓는다. 즉 서정뢰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데에 이 영화의 목적이 없음을 영화 초반부터 보이고 있다.
양조위는 어린 시절 생긴 일 때문에 지옥 속에서 살고 있고, 금성무는 애인의 죽음 때문에 지옥에서 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금성무가 자신의 고통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적극적이지만, 양조위는 수면 아래서 그 원인 제공자에게 복수하기 위해 적극적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지옥에서 살고 있다는 점 외에, 그 이미 벌어진 일이 발목을 붙잡고 있다는 점과 그 일에 당시 자신들이 개입해 막거나 방지했더라면 식의 책임이 개입될 부분이 전혀 없다는 부분이 닮아 있다. 즉 한 명은 너무 어렸고, 한 명은 자신에게 원인이 있지 않았다. (뭐 깊이 들어가보면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그런데 이 둘은 이미 벌어진 일 때문에 괴로워하고 그 일을 어떻게든 해결하고자 한다. 술에 절어 살든, 애인이 왜 죽었든, 지금 그 이유를 알아봤자 어떤 의미가 있을지 아무도 모르지만 금성무는 초반부터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그래서 난, 영화의 이런 설정이 참 좋았다. 둘에게 책임은 없고 애써 잊고 살면 끝이겠지만, 이 둘은 그러질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복수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수시로 그 술집에 출입할 수 밖에 없다. 또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많이 아쉽다. 양조위와 금성무의 이야기는 제대로 맞물리지 않고, 범인을 보여줬으면서도 계속 아닐 수도 있어 식으로 모호하게 범인 찾기를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은 <무간도>보다 훨씬 단순해졌지만 훨씬 평면적이다. 사건을 의뢰하고 뭔가 알고 있을 것 같은 서정뢰는 영화 내내 금성무와 술마시거나 양조위와 몇 마디 하는 걸 빼고는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금성무가 다시 사랑에 빠지는 대상이 되는 서기는 거의 재앙이라고 할 수준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두문택은 유머러스하지만 그닥 특징이 없다. 즉 좀더 치밀하고 짜임새 있을 수 있던 영화와 조연들은 그냥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장치 정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서기야 캐릭터가 그 모양이라 할 수 없다 치고, 서정뢰가 병원에서 하는 마지막 대사와 옆으로 고개 돌리고 우는 장면을 보면 정말 한심해서 한숨이 나올 정도다. (그나마 서정뢰는 이전까지 보여줬던 참하고 세련된 스타일을 외양으로 보여준다.) 이게 그렇게 처리할 장면이었냐, 감독들아.
<무간도>를 보면서도 ‘저런 좋은 소재로 저렇게 밖에 못 만드냐’ 했었는데 <상성>은 그런 점에서 더 심하다.
그런데도 왜 이 영화가 좋았을까.
나는 이들이 처한 상황이 와닿았고 이들이 보인 태도가 마음 아팠다.
양조위는 복수를 위해 서정뢰와 결혼했고 차례차례 목표를 달성한다.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설정하고 가스폭발로 입원한 서정뢰의 병원으로 찾아온, 모든 전말을 눈치 챈 금성무와 둘은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 전에 서정뢰는 병실침대에 누워 담담히 묻는다.
“우리 아빠 때문에 나한테 접근했던 거야?”
“응.”
아무 망설임도 없이 양조위가 즉시 대답하는 데, 무표정한데도 정말 슬프더라.
형수까지 죽일 필요 없었지 않느냐란 금성무의 말에 모든 것을 잃어봤느냐고 양조위는 묻는다.
금성무가 담담하게 애인이 그날 누구를 기다렸는지 알았다며 이야기한다. 애인이 기다린 사람은 아기 아빠이고, 그 사람은 이브날 자신의 옆 차선에서 사고를 당한 그 사람이다. 식물인간이 되어 병원에 누워 있는데 자신과 서기가 종종 찾아간다. 그렇게라도 하고 싶었다.
모든 걸 다 잃고 혼자가 되어 복수만을 꿈꿨지만, 복수가 성공한 순간 이제 다시 혼자가 됐다는 양조위를 두고 금성무는 병원을 나선다. 간호사가 달려오고 양조위는 서정뢰의 시체와 마주한다. 그리고 주저 없이 권총을 꺼내 자살한다.
나는 이 둘이 지옥 속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각기 선택한 방식이 좋았다.
궁금증에서 시작했든 어쨌든 자살한 애인의 이유를 찾아 그 상처와 마주하고 그렇게 해서 빠져나오는 금성무가 좋았다.
복수를 이유로 시작했지만 결국 부인을 사랑하게 되고, 그래도 결국은 죽일 수밖에 없는 사람,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그렇게 죽을 수밖에 없던 양조위가 좋았다.
우스운 말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 처음 한 생각이
그래도 살아야지, 살려고 노력을 해야지
이거였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노력했고 그 끝을 봤다. 그래서 나 같으면 어땠을까, 나는 어떤 방식을 택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