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의 포스트모던 라이프(姨妈的后现代生活; The Postmodern Life Of My Aunt, 2006)
by 주렁주렁™2008.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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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의 포스트모던 라이프(姨妈的后现代生活; The Postmodern Life Of My Aunt, 2006)
감독:허안화(许鞍华)
각본 : 이 장(李 樯)
음악 : 두곡지
주연 : 사금고왜(斯琴高娃), 주윤발(周润发), 조미(赵薇), 로연(卢燕), 사가(史可), 关文硕 王子文
상해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금고왜. 같은 아파트에 사는 로연은 사금고왜에 비해 화려한 옷차림과 머리 모양으로 사금고왜의 성질을 늘 긁고, 사금고왜는 로연의 고양이가 자신의 새를 잡아먹었다 믿고 있다. 부잣집 어린 아이의 영어 가정교사를 맡게 되지만 영국식 발음이라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조카 콴콴과 잠시 살게 되지만 콴콴은 자작 납치극을 펼쳐 이모를 실망시키고, 공원에서 만난 마음에 든 남자 주윤발은 돈을 빌려서는 사라진다.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사가의 입원한 딸 이야기에 마음이 아파 사가에게 자신의 집 살림을 맡기지만 그녀는 알고봤더니 자해공갈단이었다. 식당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주윤발에게 마음을 주고 잠자리까지 하게 되지만 그의 말을 믿고 그간 모은 돈을 다 써 사버린 묘지터는 다음날 사기였음이 밝혀진다. 육교에서 굴러떨어져 입원하게 되고 간병온 딸은 그녀에게 별반 관심이 없고 오히려 적대적이다.
<이모의 포스트모던 라이프>는 처음 보는 허안화 영화이다. 홍콩 뉴웨이브의 대표 작가로 칭송받았던 허안화의 작품은 제목만 낯익었지 볼 기회가 없었거나(호월적고사, 객도추한 같은 작품) 전혀 관심이 가지 않는 작품(반생연, 옥관음 같은 작품)이었다. 처음 접한 허안화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은, '허안화 많많치 않구나'다.
이혼을 통해 남편과 아이, 지방에서의 구차한 삶을 버리고 상해에서 혼자만의 모던 라이프를 이뤄가고 있는 한 여성(나이 50을 훌쩍 넘긴)의 모습을 그린 <이모의 포스트 모던 라이프>는 웃음과 씁쓸함, 비정함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관계에 처한 사금고왜의 모습에서, 허안화는 좀더 감정적으로, 깊게, 오랜 장면을 할애해서 나아갈 수 있지만 절대 그러질 않는다.
이모가 공원에서 주윤발을 만나고 그에게 돈을 꿔주고 받지 못했다가 우연히 다시 만나 사랑하게 되고 주윤발을 말을 믿고 그간 모았던 총 재산을 날리게 되는 부분이 있다. 나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 영화가 로맨스이길 바라고 이모가 그리 부당하게 돈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으로는, 저 나이 먹은 그다지 똑똑해보이지 않는 여자가 남자한테 저리 쉽게 빠져드니 사기 당하는 게 수순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이모는 외로워서였던, 다른 꿍꿍이가 있었던, 친절을 베풀지만 그 친절은 그녀의 생각과는 다른 결과로 돌아온다. 이 결과 앞에서 보여주는 태도와 표정에서 사금고왜의 연기는 굉장하고 그녀의 연기와 이모를 배신한 사람들을 통해 드러나는 허안화의 시선 역시 빛난다.
납치된 조카 때문에 전전긍긍하다 경찰에 신고하나 조카의 자작극임을 안 그녀는 조카에게 받은 생활비를 돌려주고 기차에 태운다. 조카는 얼마나 미안하고 이모는 얼마나 섭섭할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터, 조카는 창가 좌석에 앉아있고 이모는 가면서 먹으라며 과일이 든 비닐봉지를 창틈으로 밀어넣는다. 식당에서 우연히 만난 사가의 딱한 사정-죽어가는 딸의 병원비에 허덕이는-에 자기집 방 한 칸을 내어주지만 사가가 일부러 차에 치어 돈을 뜯어내는 것을 보고는 문 앞에 다시는 오지 말라는 쪽지를 붙여놓는다. 이때 이모는 귀를 문에 바짝 붙이고 밖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마음을 주었던 주윤발을 배신을 알고는 그녀는 침대에 누워버린다. 병간호를 해주겠다며(사실은 다른 목적으로 방문) 애인을 대동하고 등장한 딸이 병실에서 술을 마시고 안주거리를 바닥에 흘려도 간호사를 불러 침대에 소변을 봤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을 감내하는 이모의 태도(그리고 사금고왜의 연기)를 묘사하는 것만으로 영화는 그치지 않는다. 조카는 이모의 침대에 핸드폰을 놓고 떠나고, 뜯어낸 돈으로 생선을 사온 사가는 문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는 이모의 쪽지를 보고는 생선을 문고리에 걸어놓고 떠난다. 얼마후 딸아이의 인공호흡기를 떼버려 감옥에 수감된 사가와 이모는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본다. 주윤발 이야기에서, 주윤발은 자신이 사기친 게 아니라지만 그녀는 더이상 믿지 않는다. 관객인 나도 믿을 수 없다. 가진 돈 전부를 잃은 늙은이가 되어버린 이모가 침대에 드러누워 더이상 꼴보기 싫다고 하지만 주윤발은 그 옆에 마냥 앉아있다. 아침이 밝고 그는 "혼자 두면 안 될 것 같아서"라며 깼으니 됐다고 코트를 입고 떠난다. 얼핏 보면 젊은 시절 바바리 코트를 날리던 주윤발의 모습이 겹쳐보이는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주윤발의 뒷모습을 길게 잡는다. 이들은 모두 이모에게 상처를 주고 이야기 밖으로 사라지지만, 이모의 모습뿐 아니라 이들의 모습에서도 내 모습을 겹쳐보일 수 있는 건 이 짧지만 빛나는 장면들 때문이다. 허안화는 이모를 마냥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고, 그렇다고 저들을 마냥 승냥이떼처럼 그리지도 않는다. 또 그렇다고 저들 역시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구구절절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한 두 장면이면 되는 것이다. 아주 짧은 그 장면 만으로 현미경 아래 놓이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 허안화는 그렇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 속에서 두 가지 모녀 관계가 나온다. 하나는 조카가 자작 납치극을 벌여 성형수술비를 마련해주고 싶었던 여인으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 세련되고 아름답지만 얼굴 반쪽이 화상자국인 이 여자는 이혼한 부모대신 할머니 손에 자라다가 어릴때 실수로 난로에 떨어져 얼굴이 그리 되고 말았다. "늘 원망했는데 이제는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서 하나도 기억을 못하지 뭐야. 그렇게 원망했는데 할머니가 기억을 못하니 너무 허무하다"고 한다. 세탁소에 취직해서 할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는 장면에서 그녀는 담담하게 어떤 마음을 누른다. 퇴원하는 길에 게가 먹고 싶다는 사금고왜에게 조미는 갖고 있던 짐을 내던지며 버럭 화를 낸다. "엄마는 아빠가 무식한 노동자라고 무시하다가 이혼하자마자 나도 버리고 상해로 가버렸지. 혼자 멋지게 살고 싶다고 말이야. 내가 어땠는지 알아?" 짧은 장면이지만 무시무시한 분노를 토해내는 조미의 대사를 통해 이모의 차가운 과거를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분노의 깊이를 담아낼 수 있는 건, 오로지 조미의 힘이었고 또 조미이기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이 역할은 주신도 안되고 서정뢰도 안되고 장쯔이는 할 수도 없다. 조미이기에 가능하다. 순간 내가 조미에 대해 그간 쌓아놓는 의심을 모두 걷어냈다. 나이만 먹은 배우가 아니었다.
마치 비정하기만 한 것처럼 리뷰를 적었지만 그렇지 않다. 사금고왜와 주윤발의 로맨스는 아주 해학적으로 묘사되고 있고 이모는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을 많이 보여준다. 주윤발과 이모가 마음을 주고 받고 몸을 섞고 그들이 지난 추억을 꺼내 그 추억과 현재가, 주윤발과 사금고왜가 공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들이 이모의 옷궤에서 경극옷을 꺼내 입고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서로 경극을 하며 노래부르는 장면이다. 굉장히 아름다울 수 있는 장면인데 허안화는 마냥 낭만을 담으며 길게 잡지 않는다. 영화를 볼때는 허안화가 너무 비정한 것이 아닌가 했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다보니, 다음의 파국을 보여주려면 그리 그리는 것이 오히려 더 비정하지 않은 태도일수도 있겠구나 싶다. 이렇게 더 보여줬으면 하는 장면은 '달(月)'을 담아낸 부분이었다.
영화 속에서 이모는 수시로 음식을 먹는다. 살기 위해서 먹는건지 먹기 위해서 사는건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이모가 끼니를 챙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늘 잘난척 떠들며 이모의 심기를 긁던 옆집 친구의 고양이를 이모는 실수로 죽이게 된다.(죽인건 주윤발이지만) 고양이는 친구에게 자식같은 존재이다. 이모는 주윤발의 권유로 구입한 자신의 묘지터를 고양이에게 주는 것으로 속죄하려 관리소를 찾지만 사기당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상해에 자신이 묻힐 땅도 가질 수 없고, 자신이 죽인 생명이 묻힐 땅 한 칸 마련할 능력이 되지 않는 이모는 밤에 삽을 들고 나가 땅을 파고 고양이를 묻는다. 한뼘 땅 한 칸 허락되지 않는 것, 그게 이모의 지금 삶이다. 이제 이모는 안산으로 돌아가 요리사로 일하는 딸과 함께 전남편과 산다. 상해에서의 모던한 삶을 내버려두고(이모가 상해를 떠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상해의 화려함이 나온다. 그때까지 허안화는 상해의 골목과 시장과 음식점만을 보여줬다) 안산에서 남편과 시장 좌판에서 신발을 판다. 물을 가지러 남편이 자리를 비우자 이모는 만토우를 꺼내 천천히 씹는다. 목이 막히는 듯이. <애정만세> 마지막 장면에서 양꾸이메이가 통곡하던 장면을 볼때와 같은 감정을 내게 안겨줬다. 그러나 허안화는 '너의 값싼 눈물따윈 원하지 않아'라는 듯이 엔딩크레딧을 올려버린다. 가슴이 먹먹해진 나만 남았다.
* 히사시 죠인가, 이름 정확히 모르겠는데 영화 끝날때 그 사람이 음악했나보다 했다. 맞더라. 누구 음악인지 감이 잡히는 것, 영화음악이라는 점에서 난 아주 싫어한다.
** 주윤발 서비스 사진. 헤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