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 박물관에서 일하는 계륜미, 그녀가 좋아하며 역시 유물 관련 일을 하는 대립인, 그리고 자신의 아픔을 달래고 할아버지의 영혼을 이해하고 싶어 대만을 찾아온 일본인. 이 세 명의 주인공이 엮어가는 영화 <경과 經過: The Passage, 2004>에서 청원탕이 매달리는 주제는 이거다. '예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가. 시공을 초월한다면 과거의 예술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소식의 <한식첩>을 소재로 셋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위에 말한 주제에다 세대를 관통하는 게 예술이란 점까지 추가를 했다. 결과는? 말하고자 하는 바도 많고 주제도 무거운데 그게 제대로 풀어내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 겉멋은 아니지만, 너무 많은 걸 담아내려 하니 영화가 계속 겉돌고 있다는 느낌. 주인공들의 감정은 깊이 파고들지를 못하고, 무엇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말했다면 마지막 쯤 가서 소식의 <한식첩>이 무척이나 감동스러워야 한다. 그런게 안느껴진다. 청원탕 감독이 '거창'이란 이름에 짓눌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음악은 무척 좋다. 고궁 박물관이 배경이니 당연히 박물관이 자주 나와서 좋았다.
데뷰작으로 <남색 대문>을 찍은 계륜미의 두번째 작품. 계륜미는 음..형편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기에는 계륜미가 맡은 <경과>의 주인공이 몹시 복잡하고 입체적이며 현실적이고, 그러면서 성인(사회인)이란 외양때문에 그런 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위치의 인물이다. 계륜미는 전형적으로 인물을 그려낸다. 덕분에 계륜미가 맡은 캐릭터는 별 매력이 느껴지질 않는다. 오히려 남자 캐릭터의 대립인이나 일본인 역이 대사가 별로 없기는 마찬가지인데도,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다가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