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상 산책/화어(2000년 이후)

란위(藍宇: Lan Yu, 2001) - 유엽에 의한, 유엽을 위한, 유엽의 영화

by 주렁주렁™ 2007. 2. 23.
사용자 삽입 이미지
란위(藍宇: Lan Yu, 2001)
감독 :  관금붕
출연 :  호군(한동), 리우 예(유엽), Yongning Zhang

1. 기묘한 체험
관금붕은 영화가 시작하고 오분도 안되어 선을 확 그어버린다. 당신이 퀴어 영화에 어느 정도를 원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만큼 나갈 생각이다 식으로. 유엽의 성.기와 체.모가 극나라하게 나오는 초반 장면을 봤을 때 당황스럽고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상하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전 동성애자들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어떤 불편함이 전혀 없다. 나는 이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도 잊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싸우고 사랑하는 이들을 보면서 난 그저 이들이 잘 되기를 바랄 뿐, 저 체위가 가능한지 꼭 저렇게 보여줘야 하는지 이전에 다른 영화를 보면서 했던 생각들을 전혀 하지 않았다.

2.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유엽!
유엽이 나오는 영화를 이전에도 몇 편 봤었다. 눈이 슬퍼보이는 배우이고 연기력이 괜찮긴 하지만 외모가 영 촌스러워서 과연 대성할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래서 <무극>이나 <황후화>에서도 조연으로 나오는 것도 외모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영화가 시작하고 호군이 유엽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혔다. 도대체 몇 년 만이지? 세상에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구나! 라고 느낀게. 순식간에 나는 사랑에 빠져버렸고 제발 란위가 행복해지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란위가 나올 때마다 배개를 끌어안고 신음하고 있었고 지나가는 말 소리에 섞인 유엽의 목소리를 구분하며 "란위다, 잡아야 돼 호군" 외치고 있었다.

3. 란위 vs 브로크백 마운틴
<란위>가 먼저 나온 영화인데도 동성애자의 사랑 이야기란 이유에서 <브로크백 마운틴>과 많이 닮아있다. 호군은 란위를 사랑하지만 남자란 여자와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건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하는 공포의 측면보다는, 같은 동양인으로서 느낄 수 있는 감정-대장부는 집안을 잘 다스려야 하고 좋은 아빠가 되어야 한다 는 느낌이다. 호군은 동성애 자체에 대한 거부감 보다는 사랑 자체에 대한 주저감이 크다. 타인과 감정을 엮고 그 타인이 보고 싶고 그 타인 외에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 사랑에 빠진 상태가 되길 무서워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애니스가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장소가 브로크백 마운틴이라면, <란위>에서 호군이 돌아갈 수 있는 곳은 란위 그 자체다. (때문에 제목부터 확연히 다르다) 결국 호군은 여자와 결혼을 하고 란위는 떠난다. 호군은 계속해서 란위를 밀어내고 싶어하고 그러면서 그리워한다. 다른 남자를 찾기도 하고 결혼을 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다시 란위 곁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신이 란위 곁에 있어야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걸 마지막에 깨닫게 된다. 그리고 결말은 비슷하게도, 호군이 사랑을 깨닫고 말하는 그 날 란위는 사고로 죽게 된다.

4. 관금붕!
까맣게 잊고 있었다. 관금붕이 얼마나 대단한 감독인지를. 나는 동성애자의 사랑 이야기라는 영화의 외양을 잊고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한다. 어떤 괴리감도 없이, 어떤 불순물이 개입됬다는 느낌도 없이, 그저 이 황량한 북경에서 이 둘이 잘되기만을 바란다. 최고다 최고야 라고 연발할 뿐이다. 지금껏 본 어떤 사랑영화보다 최고다.

5. 란위와 한동
유엽과 호군. 이 둘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는 축복에 감사한다.


사족.
호군은 자신이 떠났던 란위를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날 다시 찾는다. 어떤 대사도 없이 포옹하는 이들을 보면서 처음에는 굳이 저 천안문 사태 시기를 다뤘어야 했나 싶었다. 중학교 때였다. 천안문에서 일어난 사건은 우리 나라 신문에 대서특필 됐고, 단신으로 탱크 앞을 막아섰던 그 젊은이가 죽을 때까지 맞았다는 이야기는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 들었다, 사실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홍위병이 어쩌구 문화대혁명이 어쩌고 이야기해도 중국의 철의 장벽의 나라라는 공포를 느끼게 해준 것은 그 단 한 장의 사진이었다.
어쩌면, 이것이 픽션일지라도, 픽션이고 사실이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 공포스러웠던 현대사로 기억하고 있고 그것을 사진으로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지만
그 순간 바로 옆에서는
부모와 자식이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헤어진 연인이 란위와 호군처럼 다시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동(호군)은 늘 떠나는 존재이고 란위(유엽)은 늘 기다렸던 존재이기에 란위가 약한 존재로 느껴질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면서, 내내 정말 강한 존재는 란위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관금붕은 란위가 일하는 장면을 잠깐 보여줄 뿐, 호군의 시야에서 떠난 란위를 굳이 카메라에 담지 않는다. 란위는 한동의 눈에 담길 때만 존재한다. 영활르 보고 만난 친구가 물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나는 대답했다.
보질 못했으니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없다고 봐야지. 그러니까 죽어야지.
서글프지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지금의 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