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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산책/화어(2000년 이후)

망불료(忘不了; Lost In Time, 2003)

by 주렁주렁™ 2008. 8. 8.
망불료(忘不了; Lost In Time)
감독 : 이동승
각본 : 방청, 완세생
출연 : 장백지, 유청운
 
소혜(小慧: 장백지)라는 한 여자가 있다. 영화 시작과 함께 남편은 사고로 죽고 여자는 남편과 전처 사이의 애를 기르겠다며 남편이 몰던 미니버스를 수리한다. 버스를 몰아 돈을 벌어 남편의 애도 키우고 집세도 내고 살아보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녀의 예상보다 훨씬 잔인하다. 서툰 운전 실력으로 승객은 적고 교통경찰에게 딱지를 떼여 벌금을 물고 만취한 손님은 차에다 토하고 가족들은 애를 왜 네가 키우냐고 하고 버스를 팔거나 임대하는 게 차라리 이득이라고 설득한다.


그렇다면 왜 소혜는 그 미니버스에 집착하는 걸까? 그건 미니버스가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소혜가 남편과의 낭만적 사랑을 회상하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엇보다 버스 안에서는 서투르게나마 자신의 삶을 제어할 수 있다.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고 심지어 남의 구역을 침범한 후 쫒아온 남자를 떨궈낼 수도 있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려 땅에 발을 디디는 그녀에게 곧장 펼쳐지는 건, 애 밥을 차려줘야 하고 어린이집에 데려줘야 하는 책임이라는 현실이고 탁자 위의 고지서이다. 집문을 열면 기다리고 있던 부모와 언니가 뭐라 하고 심지어 언니는 다시 찾아와 그녀더러 현실을 모르고 이기적이기까지 하다며 비난한다. 자신들의 구역을 침범 당하자 분노한 기사들은 버스를 따라잡지 못해도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버스를 부숴버린다.
 

이런 소혜 옆에 대휘(大輝: 유청운)라는 한 남자가 있다. 남편의 사고 순간 우연히 함께 있던 역시 버스 운전사인 대휘는 처음에는 버스에 관한 요령을, 뒤로 가면서는 점점 큰 도움을 베푼다. 연인을 사고사로 잃은 여자와 그런 여자를 도와주는 한 남자 이야기. 익숙하다. 그렇다면 <망불료>는 통속 신파극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감독인 이동승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망불료>는 무서우리만치 현실적인 영화다.

소혜는 버스에서의 삶과 엄마로서의 삶을 병행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라며 애를 버리라는 가족들의 말에 돈 밖에 모른다고 분노할 수 있다. 가족들의 말은 경험 없이 엄마 역할을 떠맡은 딸에 대한 걱정이고 딸에 대한 낭만적인 애정이다. 그러나 대휘는 다르다. 그는 보편적인 멜로 영화의 한없이 베푸는 남자 주인공이 아니다. <망불료>에서 대휘는 가장 현실적인 조언을 던지는 사람이고 단순히 여자에 대한 관심으로 인해서가 아닌, 방치된 아이 자체에 관심을 가지며 그 아이의 ‘존재’를 소혜에게 끊임없이 인식시키는 사람이고 엄마로서의 무능을 깨닫게 하는 사람이다. 가족들이 미래를 지적하며 그녀 자체를 걱정하는 말에 화낼 수 있지만 지금의 그녀를 지적하는 대휘한테는 화낼 수가 없다.

보통 이런 영화에서는 아이가 기능적인 역할로 한정될 수 있다. 새아빠와 엄마와의 가교 역할을 하거나 마냥 귀여워서 힘든 엄마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역할로 말이다. 이동승은 한 순간도 아이를 그렇게 그리지 않는다. 이동승이 묘사하는 이 아이는 사람이다. 갈등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봉합을 위해 스크린 구석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카메라는 아이의 존재를 시종일관 깨우쳐주고 아이라는 현실을 일깨워준다.

특히 소혜가 결국 현실을 인정하고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러 가는 장면. 소혜도 알고 대휘도 안다, 아이만 지금 상황을 모른다. 대휘는 이러는 것 보다 차라리 버스를 팔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지만 소혜는 아직 버스에서 내려올 수가 없다. 차마 고아원까지 들어갈 수 없어 길 맞은편에 서있는 대휘와 손을 끄는 소혜를, 아이는 번갈아 쳐다본다. 순간 관객인 나는 무서워진다. 저 아이가 눈치 채면 어떡하나. 이 상황을 모르길 바란다. 결국 아이는 눈치 챈다. 그리고 말한다. “착한 아이가 될게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다. 사랑해요 도 아니고 버리지 말아요 도 아닌, 자신이 내걸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을 말하는 거다. 아이는 이어“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보내 달라”고 울어대며 대휘를 부른다. 아이를 버리려다 맘이 약해져서 포기하고 돌아오는 식으로 묘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동승은 그러지 않는다. 너무나 사실적이며 잔인한 이 짧은 대사로 이동승은 다시금 현실을 일깨우며 아이를 영화속 장치가 아닌 사람으로 인식시킨다. 허구일 때는 모르는 척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아이는 실재다, 버릴 수 없다. 그래서 더 절실하고 더 슬프고 소혜도 울고 나도 우는 거다.
 

대휘는 어떨까? 그는 멜로 드라마의 흔한 남자주인공일까? 소혜에게 충고하는 것처럼 그 자신은 현실적인 인간일까? 대휘 역시 버스에서 내려오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둘이 처음으로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장면은 가슴이 시리다. 대휘는 계속해서 친절을 베푼다. 왜 그럴까? 소혜한테 푹 빠진 걸까? 여기서 이동승은 또다시 뻔한 길로 가지 않는다. 대휘가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 장면은 거의 없는데, 아주 간혹 “예전에 사장이었다”느니 하는 대사가 나온다. 그래서 뭔가 사정이 있겠구나 짐작하게 된다.

앞서 아이의 존재를 끊임없이 일깨우는 사람이 대휘라고 언급했다. 대휘는 대사를 통해 아이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지만, 배우 유청운은 연기 - 처음으로 아이와 만나고 아이를 재우는 그 짧은 장면 - 로 이 사람이 그저 여자한테 반해서 그런다거나 외로워서 애를 좋아하는 캐릭터라거나 식의 단순한 판단을 거부한다. 아 저 사람은 애를 키워봤구나, 커 가는 아이를 옆에서 봤구나, 자신의 애가 있었구나……진짜 짧은 장면인데, 정말 단순한 표정과 행동인데, 유청운은 정말 무시무시하게 납득시킨다. 다시 울컥하게 된다. 저 사람은 지금 여자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다, 묘사되지 않는 저 사람만의 또 다른 사정이 있구나, 깨닫게 된다.

말미에 가면 대사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렇겠다, 그렇겠다 싶더라. 자신의 가족이 어느 다른 공간에서 모자 가정으로 우왕좌왕하고 있을지 모른다, 자신이 도와주는 것만큼 떠난 가족도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대휘가 순간 구원받았다고 느꼈다. 소혜가 버스를 모는 것처럼 그는 다른 방식으로 치유를 하려 한다.
 

망불료는 잊을 수 없다는 뜻이다. 뭘 잊을 수 없다는 걸까? 각자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고 또 그래서 페이크일 수도 있을 것 같고. 나는 ‘상처겠지, 시간이겠지’ 싶다. 소혜와 대휘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선택이 아닌 외부에 의해 붕괴된 사람들이다. 한 명은 붕괴과정을 겪는 걸로 나오고 다른 한 명은 붕괴됐지만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으로 나온다. 상처가 생겼고 그 상처에 초연해지기 위해 온 몸으로 부딪친다. 자동응답기의 메모를 지울 수 있고 옷장 속 옷을 꺼내 정리할 수 있지만, 상흔은 남아있을 거다. 이동승은 망불료란 제목을 통해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상처는 남아있을 거다,
그렇지만 상흔을 갖고 살아가도 괜찮지 않나,
견디려 했던 그 시간을 잊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

이동승은 가장 현실적인 게 가장 뛰어난 멜로가 될 수 있다는 걸 성취해낸다. 혹자는 해피엔딩의 결말을 보고 성급한 안착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을 거다. 내가 이동승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그럼 좀 어떤가?
 

* 종종 배우들의 연기를 논하지 않으면 ‘배신’이 되는 영화가 있다. <망불료> 역시 그렇다, 장백지와 유청운의 연기를 논하지 않으면 배신이다. 대휘는 모호하고 복잡한 캐릭터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걸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에 빠진 남자로 판단되게 모호하다. 그런데 유청운은 그런 단순성을 거부한다. 이 역할이 이리 복잡하고 굴곡 있는 캐릭터가 될 수 있는 건 유청운 연기 덕이 크다. 끊임없이 저 남자의 진심이 뭘까 생각하게 만들고 속사정은 뭔지 궁금하게 만드는 것. 유청운은 한 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그걸 실현해 낸다. 이에 반해 장백지가 연기한 소혜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그녀는 초반 남편의 사고사로 붕괴한다. 복잡하고 싶어도 복잡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나? 복잡할 정신머리가 소혜에게 어디 있나? <성원>의 배우가 이렇게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걸 목도하니 놀랐다. 혼란스럽고 인정하고 싶지 않고 그래도 살아야 하고 모든 게 불안한 상황, 이 모든 걸 장백지는 연기해낸다. 잘했다 수준이 아니라,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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