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척료; 절대초인(大隻佬, Running On Karama, 2003) vs 신탐; 미친 형사(神探; Mad Detective; Godly Detective, 2007)
by 주렁주렁™2008. 6. 20.
대척료; 절대초인(大隻佬; Running On Karama, 2003) 감독 : 두기봉, 위가휘 각본 : 위가휘, 유내해, 구건아, 엽천성 주연 : 유덕화, 장백지 음악 : 黃嘉倩 촬영 : 정조강 / 陶鴻武(第二組攝影) 23회 홍콩 금상장 작품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수상
신탐; 미친 형사(神探; Mad Detective; Godly Detective, 2007) 감독 : 두기봉, 위가휘 각본 : 위가휘, 구건아 주연 : 유청운, 임희뢰, 임가동, 안지걸, 임설 음악 : Xavier Jamaux 촬영 : 정조강 27회 홍콩 금상장 각본상 수상
두기봉과 위가휘가 공동 감독인 <대척료; 절대초인(大隻佬, Running On Karama, 2003)>과 <신탐; 미친 형사(神探; Mad Detective; Godly Detective, 2007)>는 꼭 쌍둥이 형제같은 영화이다. 두 영화의 주인공 모두 '남들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대척료>의 주인공(주인공 이름이 대척료)인 수도승 출신의 유덕화는 사람들의 전생(업)을 볼 수 있고 <신탐>의 주인공인 형사 출신의 유청운은 타인의 진짜 인격을 볼 수 있다. 보통 사람과 다른 이 평범한 능력이 두 편의 영화에서 주요한 소재가 되고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매개체가 된다.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을 끌어가는 몫은 위가휘였던 것으로 짐작되고, 두 편 모두 내 눈에는 위가휘의 영화로 보인다. (위가휘는 <대척료>를 찍고 독립한 후 <신탐>으로 다시 두기봉과 합작한다. 공동작품이긴 하지만, 위가휘가 금상장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두 차례는 모두 이 두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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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죽인 살인자를 쫒다가 실수로 참새를 죽인 유덕화는 절을 나와 속세를 떠돌다가 우연히 형사 장백지와 만나게 된다. 그는 타인의 삶에 개입하고 싶지 않지만 눈 앞에 자꾸 보이는 전생 때문에 장백지 돕기를 자처하고, <대척료> 전반부는 유덕화가 장백지를 도와 해결하는 두가지 사건을 그리고 있다. 유덕화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건해결을 도우려하는데 거대한 근육질 몸을 외형으로 한 그의 이런 모습은 마치 무협물 속의 알고봤더니 기인이더라 같다. 장백지는 '비교적 쉽게' 그의 능력을 신뢰하고 그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도 도우려한다. 종종 이 둘이 자아내는 멜로 영화의 분위기는 마지막 장백지의 죽음의 비극성을 부각시키고 상업적인 색채를 더 부여하려고 그런게 아닌가 싶다.
유덕화는 영화 후반부 산 속에서의 장면 외에는 딱히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자신의 능력을 미덥잖아하는 장백지의 신뢰를 얻기 위해 설명하고 보여주는 게, 그나마 적극적으로 자신을 설명하는 모습이다. 그는 타인에게 배타적이지는 않지만 굳이 나서서 윤회(업)의 고리를 끊어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는 윤회의 의미를 잘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장백지에게 그녀의 업을 설명할 때가 되면 이 느낌은 절정에 달한다. 그런데 이때부터 영화는 골치아프게 움직인다. 장백지는 어차피 과거의 죄과를 씻기 위해 죽어야 하는 운명이라면 남의 도움이 되겠다며 유덕화의 일을 도우려다 살해당한다. 이제까지 방관자의 입장을 견지하던 유덕화는 친구를 죽인 살인자가 장백지를 죽였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예전의 그 산으로 다시 들어가고 산 속에서 또 다른 자신과 만나게 된다.
장백지에게, 전생에 죄를 저지른 네가 지금의 너는 아니지만 그 죄과를 치뤄야하는 게 업이다 라고 말할 때 그는 제 3자이다. 현생의 장백지가 전생과는 다르게 선한 사람이라는 걸 알며 윤회의 고리를 끊어버리기를 바라며 돕지만 더이상 자신이 개입할 문제가 아닌, 그녀 스스로 해야할 일이라는 걸 깨달으며 손을 뗀다. 그러나 장백지가 자신의 삶에 개입해 도우려고 애쓰리라고는 상상도 못한다. 장백지가 자신의 죽음으로 전생의 업을 청산한다면 유덕화는 또 다른 자신과 만나 현생에서 저지르려던 죄를 그만둔다. 때문에 번뇌와 미움을 초월한 그는 평범한 '몸'으로 돌아와 적삼을 걸치고 머리를 깎고 경찰의 담배를 빌어 유유자적하게 떠날 수 있는 거다.
유덕화는 영화 시작부터 거의 마지막까지 거대한 근육질 모습으로 나온다. 영화속 사람들은 유덕화에게 멋지다고 열광하지만 스크린 밖 관객은 바보가 아닌 이상 유덕화라는 '스타'의 진짜 모습을 안다. 그의 몸에 어떤 장치나 화면상 속임수일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때문에 유덕화의 이런 외양은 관객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게 만들어준다. 즉 유덕화가 맡은 '대척료'가 지금 어떤 문제에 봉착해서 저런 모습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해준다. 곧이어 장백지에게 자신의 능력을 나름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며 보여주는데 관객은 신뢰하는 장백지의 시선을 통해, 그리고 몸에 대해 의문이 먼저 자리잡았기에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별반 의심없이 바라보게 된다.
이에 반해 <신탐>의 유청운은 좀더 적극적으로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인물이다. 그는 진짜 내면의 인격이 하는 말을 들으며 가서 훈계하거나, 형사였을 시 맡았던 사건해결 과정에서는 피해자(혹은 가해자) 역할이 되보는 방법으로 사건을 추리한다. 그는 이런 적극성(자신의 능력을 그대로 드러내는 무심함) 때문에 대다수의 주변인들에게 미친놈 취급을 받는다. 외양상 그는 일반인과 아무 차이가 없고 본인한테는 '눈'이, 주변인이 느끼기에는 '입과 머리'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영화 초반 유청운이 자신의 귀를 도려내는 장면이 나오지만 고무 귀인지 진짜 귀인지 붙이고 다니기 때문에 보기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대척료>의 유덕화는 자신의 능력을 말하지 않는데 반해 유청운은 다르다. 그는 능력을 적극적으로 사건해결에 이용한다. 무엇보다 그는 진짜 인격이 하는 말이 생생하게 들리고 그걸 참기에는 너무 예민하고 무심하다. 그래서 <신탐>에서는 주변 사람들이 그를 두고 "미쳤다"고 말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그를 수사에 끌어들이는 안지걸의 시선에도 완전한 믿음이 담겨 있지는 않다. 관객은 유청운의 시각으로 묘사되는 장면을 보며 그의 능력을 믿고 싶어 하지만 감독은 자꾸 주변인들의 증언이나 의외의 단서를 차례차례 던지며 관객을 머뭇거리게 만든다.
유청운은 말단 형사 임가동의 내면에서 일곱 개의 인격을 발견하고, 그를 가해자로 의심하며 조사한다. <신탐>은 <대척료>보다 이야기 자체도 훨씬 짜임새있고 미끈하며 형식도 멋지다. 유청운이 일곱 개의 인격을 발견하는 장면, 즉 한 사람의 내면에 인격이 일곱 개가 있다는 사실을 묘사하는 장면 - 이들이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걸어가는 - 이 소름끼치게 멋있었다. 라스트의 거울 씬보다 이 장면이 훨씬 멋있었다. 그걸 CG나 설명이 아닌, 살아있는 배우들로 명확하게 각인시켜버리는 그 솜씨에 끔찍하게 감동했다. <대척료>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면 <신탐>은 스타일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건 내 호기심이 '업'에 있고, 다중인격에는 흥미가 없기 때문인 이유가 크다. 짜임새나 스타일이나 모든 점에서 <신탐>에 점수를 훨씬 주게 되는데도 <대척료>를 아끼게 되는 건 그때문이다.
<신탐>에서는 처음부터 유청운이 사건 당사자가 되어 사건을 재구성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대척료>에서는 영화가 시작하고 좀 지나서 나온다. <신탐>에서 다중인격에 대한 묘사가 워낙 강렬하다보니 유청운의 능력 묘사는 별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에 반해 유덕화가 그 초인적인 능력(그는 전생만 볼 뿐 아니라 무도승 출신이라 신체적인 능력도 출중하다)으로 살인자와 피해자가 서로 치고박고 찌르는 상황을 그 혼자 재현해보이는 장면은 몇 번을 봐도 멋지다. <신탐>의 휘파람 장면이 멋진 것처럼.
<대척료>가 사람의 본성에 대해 상냥하고 긍정적으로 묘사한다면 <신탐>은 냉소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다. 이런 부위기에서 당연히 전자는 죽어도 사는 게 되고, 후자는 비극적인 죽음이 되고 만다. <대척료>가 최소한 세 가지 사건을 통해 유덕화의 능력을 보여주고 그를 바라보는 장백지와 관객의 시선을 하나로 만들고 있다면, 그래서 이야기가 좀더 친절하고 때문에 늘어진다면, <신탐>은 한가지 사건을 촘촘하게 그려내느라 상대적으로(또는 의도적으로) 주인공에 대한 시선이 냉정한 대신 이야기는 매끈하고 영상은 멋지다.
* 수상내역은 <대척료>가 훨씬 화려하다. 재밌는 건 그 해 <대척료>가 작품상을, 감독상은 <PTU>로 두기봉이, 여우주연상은 <대척료>와 <망불료>로 후보에 오른 장백지가 <망불료>로 수상했다. 다 쓸어갔구나 싶더라.
** 이 두 작품을 보고 나니 위가휘의 '이야기'에 흥미가 부쩍 생겼다.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