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뢰대(打擂台; Gallants, 2010)
감독: 곽자건, 정사걸
각본: 곽자건, 정사걸, 담광연
촬영 : 가성패
음악 : 태적라빈, 위개량
액션 : 원덕 元德
출연 : 양소걸, 진관태, 태적라빈, 소음음, 황우남, 진혜민, 가효신, 구양정, 나망, 이해도, 나영창
무협 영화의 주된 정서 중 하나는 '복수'이다. 지기를 위한 복수이던 가족을 위한 복수이던, 유명한 무협영화에서 주로 추구하는 정서는 대부분 복수라 할 수 있다. 허나 최근 무협물의 부흥을 다시 일으킨 <엽문>의 경우, 복수의 틀을 약간 빌리면서 여기에 민족주의 색채를 가득 입힌 작품이었다면, <
타뢰대 >가 계승하는 부분은 복수가 아니다. 그럼 뭘까? 우리가 복수에 비해 간과하는, 잊고 있던, 바로 '사부 찾기' 이다. 그리고 '사부'라는 의미를 다시 스크린 속에 부활시킨 게 <타뢰대>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청대 민간무술 대회를 가르키는 '타뇌태'를 제목으로 한 <
타뢰대>의 이야기는 평범한 샐러리맨 황우남이 동네 건달들에게 해꼬지를 당하다가 우연히 다리를 저는 고수를 만나며 시작한다. 그가 쫒아간 고수가 가는 곳은 낡은 차로(茶樓)이고, 그 곳에는 고수처럼 늙은 중년의 사형이 있으며 윗층에는 30년 째 식물인간 상태인 그들의 '사부'가 누워있다. <
타뢰대>는 소심남의 강해지기에 치중하기 보다는, 일련의 해프닝을 거쳐 깨어난 사부와 나이든 제자들을 담는 데 치중한다.
사부가 30년 만에 깨어나자 그간 열심히 봉양하며 남아있던 두 제자는 너무나 기뻐한다. "사부님, 저라니까요!"란 제자들의 기쁨에 찬 간절한 말도 사부 눈엔 "이런 노땅들이 왜 내 제자?"인가 싶을 뿐이다. "무슨 이런 늙은 제자가 다 있어?"란 사부의 두 제자와 함께 사부를 연모하며 늙어 온 소음음의 등장 역시 사부에겐 "이 할머니는 또 누구인가?"싶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껏 봉양했던 자기들은 알아보지도 못하면서, 이 상황에 엉겁결에 휘말린 소심남을 자기 제자로 착각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실망하고 "저게 정말 우리 사부님이야?" "이제 막 깨어나셨잖아!"라고 서로를 위로한다. 섭섭하고 실망스럽고 그간 시간들은 뭐였나 싶고 이렇게 늙어버린 우린 뭔가 싶고....이들이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들을 영화에서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는 인물은, 총 10분도 등장하지 않는 것 같은 소음음이다. 자신을 기억도 못하고 '노망난 할망구'처럼 쳐다보는 사부를 위해 소음음은 말없이 음식을 만들고 진맥을 하고 자리를 지킨다. 순간 보는 나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꼭 죽은 연인을 몇십년 그리워하다 드디어 꿈 속에서 만났지만, 젊어죽은 연인은 그 모습 그대로일 뿐 아니라 늙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그저 울기만 하는 소식의 시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같은 슬픔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사부는 버려야 하는 건가? 이제 사부는 더이상 사부가 아닌 것인가? <
타뢰대>의 사부는 그래도 역시 사부다. 30년 간의 기억이 없어도 사부는 여전히 제자들에게 무술을 가리키는 존재이며, 먹고 사느라 정신없던 제자들을 술집에 데려가는 존재이다. 물론 사부가 호탕하게 술집 주인에게 "나는 아가씨 필요없고 얘네들 한테나 두 살 어린 애들 데려다 줘."라 하는데, 그 다음 장면은 방을 가득 채운 4-50대 아줌마들, 그리고 그 틈에 쫄아서 울 것같은 표정으로 자리한 두 제자들이다. 아랑곳 없이 마이크 잡고 춤추며 노래하는 사부. 영화에서 가장 웃겼던 장면이었다.
오랫만에 영화로 돌아온 태적라빈은 이런 사부의 존재를 등장만으로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과거에 사부였기 때문에 계속 사부로 모셔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간의 시간이 아까워서 버릴 수 없는 존재도 아니며, 30년의 기억이 없어졌어도 여전히 멋있는 사부. 그리고 길바닥에 쓰러져서 기억을 되찾자마자, 복수하러 달려가려는 제자의 손목을 콱 움켜쥔다, 싸우지 말라며. 그 순간 사부가 하는 말을 직역하면 "사부는 네가 싸우는 걸 허락할 수 없다."이다. 안된다거나 하지 말라거나 그런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사부는 허락하지 않는다"니! 얼마나 무서우면서도 사부다운 말인가. (순간 <패가자>에서 스승인 임정영이 칼을 맞아 죽어가면서도 제자인 원표를 제지하며 "저 놈은 청나라 고관대작 아들이다. 네가 덤비면 너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멸문지화의 화를 당한다"며 말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
타뢰대>에는 애니메이션 장면이 종종 등장한다. <고혹자>처럼 캐릭터를 각인시키는 방법으로 쓰이는 게 아니라, <
타뢰대>에서는 주로 늙은 몸으로 느끼는 '고통'을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뼈가 부러지고 관절이 나가는 그런 상황을 만화로 보여주면서도, 이 영화는 그들이 싸우는 장면은 날 것 그대로 담아내려 최대한 예의를 지킨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들과 싸움을 벌이는 상대방들 역시 비록 악당이긴 하나 싸우는 그 순간만은 그들 또한 무예가임을 표현하려 노력한다. 중년의 무예가들은 사부를 경외감 어리게 쳐다보고, 이 중년의 무예가들이 벌이는 싸움을 새파란 젊은 제자들 역시 존경스럽게 바라보는 것이다. 저 모습이 내 미래의 모습일 수 있다는 듯이, 나도 저런 사부를 만나면 좋겠다는 듯이.
그리고 한 명은 팔이 부러지고 한 명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미친 듯이 웃고, 또 이 사단을 일으킨 악당 무예가는 제자에게 "알겠냐? 너는 몇 십년이 지나야 이해할 수 있을거"라 하더니 이 둘을 보고는 피식 웃는다. 모든 가치가 사라져버린 이 강호에서 설사 적이더라도 이런 무예가들을 다시 만났단 것만으로 기쁘다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한 명은 팔이 부러지고 한 명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미친 듯이 웃고, 또 이 사단을 일으킨 악당 무예가는 제자에게 "알겠냐? 너는 몇 십년이 지나야 이해할 수 있을거"라 하더니 이 둘을 보고는 피식 웃는다. 모든 가치가 사라져버린 이 강호에서 설사 적이더라도 이런 무예가들을 다시 만났단 것만으로 기쁘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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