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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산책/화어(2000년 이후)

봄바람에 취한 밤; 스프링 피버(春風沉醉的晚上; spring fever, 2009)

by 주렁주렁™ 2010. 12. 10.
봄바람에 취한 밤; 스프링 피버(春風沉醉的晚上; spring fever, 2009)

각본 : 매봉 梅峰
감독 : 로우예 娄烨
主演: 진호, 진사성, 담탁, 오위, 강가기



*대량의 내용노출 있음

「...내 노동의 댓가로 처음 받은 이 50원에서 벌써 30원을 써버렸다. 게다가 원래 갖고 있던 10원을 보태 방값을 내고 나니 남은 돈은 2,3원, 대단하지 않은가! 이 헐어빠진 솜두루마기를 갖다 맡겨야겠네! 하지만 전당포에선 끔찍하다고 받아주지도 않을 것이다. 그 여자아이가 너무나 불쌍하다. 허나 내 지금 형편도 그녀보다 나을 게 없다. 그녀가 일하고 싶지 않아도 일이 그녀가 할수밖에 없도록 강요하는 쪽이라면, 나는 일을 하고 싶어도 찾지도 못했으니까. 근육 쓰는 노동을 하자! 아아, 나같은 약골이 인력거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자살! 나에게 용기가 있다면 진작 해치웠을거다. 여전히 이 두 글자가 떠오르는 건 그만큼 내 의지가 완전히 소모되진 않았단 증거이겠지! 하하하하!  오늘 그 전차의 운전사! 나더러 뭐라고 욕했더라? 누렁이라 했지, 누렁이 진짜 좋은 단어 아닌가....」

<봄바람에 취한 밤>은 밀실로 숨어들어 정사를 나누는 게이커플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침대에 누워 한 명이 다른 한 명에게 이 영화와 동명의 소설, 욱달부의 <봄바람에 취한 밤> 중 위에 인용한 부분을 읽어준다. 인용문의 화자인 "개 같은 나"는 영화속에서 누구일까? 

책을 읽어주던 왕평(王平)은 이미 아내가 있는 존재. 게다가 그 아내는 남편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탐정에게 조사를 부탁한 상태다. 영화의 첫번째 파국은 왕평이 언젠가 들킬지도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애인인 정강(程江)을 아내에게 소개하면서 일어난다. 이미 아내는 남편에게 다른 남자가 있고 그 남자인 정강의 얼굴까지 알고 있다. 오랫만에 우연히 만나게 된 동창이라며 식사자리까지 만들어  정강을 소개하자 참다못한 아내는 대충 핑계를 대고는 자리를 일찍 뜬다. 그렇지 않은가? 이건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사람을 우습게 봐도 정도가 있지. 

결국 아내가 정강의 회사로 찾아가 "내가 왕평과 이혼할 것 같아? 난 절대 이혼하지 않아!"라며 난장판을 만든다. "남자인 주제에!" 정강은 왕평에게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은채 이별을 통보하고 계속 연락을 피한다. 그러면서 게이바에 출몰한다. 그런데 이 장소에 그간 그를 미행하던 탐정이 와있다. 왜 일까? 미행하다 끌렸을까? 아니면 설마 의뢰인이 회사까지 찾아가서 아웃팅을 해버린 거에 미안함을 느껴서일까? 이 낯선 게이가 자살이라도 할까 걱정이 되서일까? 아니면 그냥 와이프까지 있는 남자와 어울린 이 게이가 궁금해서일까? 아니면 게이바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일까?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가는 중, 탐정의 애인인 이정(李靜)이 일하는 공장에 문제가 생긴다. 광동어를  쓰는 공장 사장은 이정에게 퇴근후 밥을 사주고 돈도 찔러준다. 그러나 육체관계 여부에 대한 묘사는 전혀 없다. 내가 순진하게 보는건지, 빈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보면, 꼭 홍콩의 돈 꽤 있는 사람이 중국에 짝퉁 제작 공장을 차려 돈을 버는데 그 중 자신의 죽은 여동생과 닮은 이정에게 잘해주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불쌍하고 배운 것 없고 돈 없는 대륙의 노동자 중 한 명인 그녀에게 잘해주며 위안을 삼는 느낌?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지 라고. (사장이 잠깐 나오는데도 이런 상상까지....)

갑자기 공장을 급습한 경찰에게 끌려가며 사장은 이정에게 걱정말라고 한다. 내일이면 부하가 꺼내줄거라고. 간신히 그 상황에서 탈출한 이정은 탐정과 함께 정강의 집에서 잠시 쉰 후 나갔다 오겠다며 미장원에 간다. 그리고 아주 예쁜 머리를 하고는 사장이 뒷일을 책임질거라 철썩같이 믿고 있는 그 부하를 찾아간다. 차안에 앉아 이정은 "사장님이 너와 내게 얼마나 은인인데!"라 설득하자 부하는 "나도 의리를 아는 인간이나 상황이 어렵다"고 완곡하게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밝힌다. 그 순간 이정이 부하에게 달려들어 껴안고는 입을 맞춘다. 그녀는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이런 방법이라도 쓰려고 미장원에 다녀왔던 걸까? 

다음날 경찰서 앞에서 부하와 이정은 출소하는 사장을 기다린다. 예전 이정에게 상다리 거하게 사주던 노천음식점에서 이번에는 사장이 그때의 품위와는 달리 게걸스레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다. 부하가 먼저 자리를 뜨고 계속 사장은, 우선 먹고 나서 생각하자는 듯이 미친듯이 먹고 있다. 이정은 전날의 그 예쁜 모습과 달리 완전히 초췌하다. 넋나간 사람처럼 사장 옆에 앉아있다 그 모습을 보던 중 갑자기 일어나 테이블의 접시들을 집어던지기 시작한다.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내가 너를 꺼내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데? 너는 지금 그게 넘어가니? 내가 간밤에 무슨 일을 당했는데? 이정은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앟고 그저 집어던지기만 한다. 

만나주지 않는 정강에게 계속 전화하고 그 집앞서 얼쩡거리던 왕평은 새벽녘 집을 나가 공원에서 손목을 긋는다. 왕평의 아내를 통해 이 소식을 알게 된 탐정이 게이바로 찾아가자 구석에서 통곡하고 있는 정강이 있다. 회사에 사표를 낸 정강과 여행을 떠나려는 탐정에게 이정의 전화가 걸려온다. 결국 세 사람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우유부단하지. 하지만 그런 처참한 목소리로 도움을 청하는 이정을 나라면 거부할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새애인이 생겼으니 너 일은 너가 알아서 하라 말할 수 있을까? 다니던 공장이 폐쇄되고 삶의 기력을 잃어버린 것같은 이 여자친구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굳이 지금 해야할까? 어차피 헤어질건데 그게 꼭 오늘이어야 할까? 좀더 이 여자의 상황이 나아진 다음에 하면 안될까? 

같이 차를 몰고 같이 여관방 하나를 잡아 쉬면서 여행을 하던 와중, 이정이 잠시 수퍼에 다녀온 사이 정강과 탐정은 진한 키스씬을 벌인다. 마침 문을 열던 이정과 정강의 눈이 마주친다. 그녀가 문을 닫고 놀란 가슴을 진정하기 위해 층계에 앉아있고, 방 안의 두 명 모두 그녀가 봤다는 걸 알고 있다. 아무말도 없이 아무것도 못본듯이 잠자리에 누워있던 중 여자가 일어나 방을 나가고 정강은 그녀를 따라간다. 탐정 역시 잠이 깬 상다. 

이정이 간 곳은 아마 여관 지하에 있는 듯한, 노래방. 홀로 노래부르는 방으로 정강이 들어선다. 마이크 잡고 흐느끼며 노래하는 그녀를 보며 정강은 무슨 생각을 할까? 여자있는 남자에게 빠진 자신이 저주스러울까? 이정도 왕평의 아내처럼 난리부릴까 무서울까? 아니면 이제 막 애인이 죽어버린 자신의 처참한 심정이 그녀에게 투영되는 걸까? 

이정에게 티슈를 건내주고는,  카메라가 갑자기 노래방 밖으로 빠진다. 노래방 문 유리 밖에서 우리는 이정의 손을 잡아주는 정강의 손이 볼 수 있다. 그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사람 손도 이렇게 잡아줬나요?"

모든게 다 너무나 이해가 절절히 되는 거다. 세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 심정이 어떨지 지금 어떤 느낌일지. 그리고 너무나 신기하게도 이정을 빼면 지독하게 평범하고 자그마한 이 다섯명 모두가 지독하게 아름다워보이는 거다. 이들의 현실이 완전 사랑과 전쟁인데도, 사람들 눈빛이나 표정이나 목소리나 대사나 모든게 정말이지 아름답더라. 예쁘게 꾸미고 특이한 구도를 쓰고 화면 보정을 하고 그런게 전혀 없는 이 칙칙한 색깔의 화면에서, 저렇게 사람을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는 로우예가 너무나 굉장해보이는거다. 

로우예의 <수조우 허> 참 좋았고, 이후의 <자호접>은 로우예가 이야기란 걸 구성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봤고, <여름 궁전>은 <자호접> 보다야 훨씬 좋았지만 주인공들의 피폐함에 마음이 아팠지 감정이입을 하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로우예의 영화는 보고 나면 영상들이 참 오래 생각난다. 그래서 계속해서 신작이 궁금하고 보고싶어지는 감독이다. 허나로우예에게 영상의 능력은 있지만 이야기 능력은 한참 떨어지는 게 아닐까, 그런 의심을 했었다. 

<봄바람에 취한 밤>이 칸에서 각본상을 탔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로우예가 하필 각본상을? 그리고 영화를 보고 정말 많이 놀랐다. 이 사람을 내가 얕잡아 봤구나..란 깨달음. 대단한 사람이었구나. 

구글링을 해보니 <해피 투게더>와 비교하는 글들이 간혹 보인다. 나는 <해피 투게더>보다 훨씬 좋았다. 너무 좋았다. 글로 얼마나 좋았는지를 표현할 수 없는게 아쉬울 정도로. 


* 아래는 영화 곳곳에서 목소리나 혹은 화면 속 자막으로 표현되는 각종 시, 소설, 그리고 대중가요 원문 모음.  이것말고 더 있을텐데 구글링으로 얻은 건 아직까지는 이 정도. 나중에 시간날때 찬찬히 해석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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