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드림; 청홍 (靑紅: Shanghai Dreams, 2005) - 부모세대에게 바치는

상하이 드림; 청홍 (靑紅: Shanghai Dreams, 2005)
감독 : 왕 샤오슈아이
출연 : 고원원

모택동의 3선 건설이란, 적의 침입을 대비해 동부에 있는 공장 시설을 서부의 산악 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정부 입장에서는 수 많은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서부에 3선을 건설하려 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로 끝났다.---<청홍> 자막을 번역&제작하신 히메로스님 블로그 에서
하방(下放)을 기억한다. 하방은 중국에서 1942년 마오쩌둥의 <옌안문예강화(<옌안문예좌담화에서의 강화>의 약칭>) 이후 바로 지식인들의 그런 희한항 행태를 뜯어고치기 위해 일정 기간 동한 상산하향(上山下鄕), 말하자면 산간벽지와 북방의 광활한 황무지에 보내 노동하게 한 일이다. 오늘 한국에서, 우리는 하방을 기억한다. --- 김규항의 <나는 왜 불온한가> 중에서

<북경자전거>를 연출한 왕 샤오슈아이가 2005년 깐느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청홍>은 3선 건설을 위해 귀양에 내려가 고향인 상해로 돌아가고자 하는 상해인 부모와 귀양에서 자란 딸 청홍의 이야기를 80년대를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 <패왕별희>와 <인생>같은 영화에서 문화대혁명 시기 상처주고받기 위해 살아가는 듯한 미친 인간들과 딸을 잃어야했던 모습으로 전율케했던 천카이거와 장이모우는 현재 열심히 무협대작을 찍어대고 있고, 지금의 중국영화에서 중국의 대도시는 너무나도 세련된 휘황찬란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왕 샤오슈아이는 영화 말미에서 "3선 건설에 참여했던 부모세대에게 바친다"는 말처럼 청홍은 남의 나라 현대사에서 남겨진 사람들, 잊어버렸거나 관심도 없던 잊혀진 부모세대의 모습을 담아낸다.

청홍의 부모는 3선 건설을 위해 귀양에 정착, 청홍과 어린 아들 하나를 데리고 있다. 청홍의 아버지를 비롯한 정착민들은 언제라도 고향 상해에 돌아가길 바라고, 돌아간 사람들의 소식이 간간히 들려오지만 정부에서 이들의 귀향을 허가해줄 지 자신이 없다. 아버지의 꿈은 이제 그저 딸 청홍이 대학에 입학하고 아들이 잘 자라 상해에 돌아가는 것이다. 때문에 청홍이 그저 열심히 공부만 했음 좋겠고 특히 귀양사람과 인연을 맺지 않길 바란다, 왜냐면 그들은 돌아가야 하니까. 이에 반해 청홍은 귀양사람인 껀이 좋고, 부모처럼 자신이 상해인이란 의식도 없어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고향이지"라 말한다.

청홍은 껀이 선물한 빨간 구두를 신는다. 초반, 교실 책상서랍에서 구두를 발견한 청홍이 남들눈에 띄지않게 깊숙히 밀어넣는 장면과, 구두를 신고 걷는 짧은 장면을 통해 청홍의 심리를 왕 샤오슈아이는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런 청홍이, 특히 청홍과 껀의 관계가 못마땅한 아버지와 청홍은 계속 충돌한다. 이들과 마찬가지 상황인 주변 상해인들조차 아버지에게 계속 충고하지만, 아버지는 "이게 바로 청홍을 위한 부모마음"이라며 청홍과의 갈등을 계속 증폭시킨다.
영화는 그런청홍과 아버지의 갈등을 한 축으로 그 둘 주변인물을 다루다가 결말은 예상치못한 파국을 그린다.
<청홍>에서 주요 관계는 전부 하방온 상해인과 상해인 사이의 관계인데, 우선 청홍과 청홍의 부모가 그렇고, 청홍과 친구 진진, 그리고 청홍 부모와 진진 모두 상해인이다. 크던 작던간에 이들은 상해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하거나(부모) 의지와 상관없이 돌아가야할 어떤 곳(자식들)으로 인식하고 있다.
청홍 주변을 맴도는 껀은 "너희 상해인들이 뭐 대단한 것이라도 되느냐? 상해인은 상해인끼리만 결혼해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느냐?"고 따지지만 청홍은 대답하지 못한다.

껀은 계속 청홍 주변을 맴돌지만 청홍 아버지의 감시로 마주하지 못한채, 이렇게 그녀 뒤를 밟거나 홀로 약속장소에서 기다린다. 이 영화 화면에서 처음 청홍이 껀과 마주했을때, 비극은 생긴다.

청홍의 친구 진진은 동네 양아치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 양아치는 이미 농장집 딸을 임신시킨 상태다. 청홍의 지적에 진진은 "설마 귀양인 여자와 결혼하겠느냐?"고 반문한다.
이렇게 영화속 귀양의 상해인은 그들만의 공동체, 그들만이 존재하는 어떤 특수한 작은 사회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청홍의 교유관계에 진진만이 등장하고 부모들은 가정의 모든 대소사를 함께 한다. 아버지와 충돌하는 청홍을 진진부모가 데려가고, 양아치와 도망간 진진을 찾으러 청홍 아버지는 온 동네를 다 돌아다닌다.
아마 홍위병으로도 활동했을 듯한 이 부모들의 대사에 조국따위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부모들의 대사에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는 이렇다.
"그래도 자네 그때는 열심이지 않았나?"
"그때야 그랬지만..지금이야 애들만 잘커주면 그만이지"
누구의 아버지든 어머니든 "이제는 애들 잘 키우는 것 밖에 바라는게 없다"고 되뇌인다. 이들의 대화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것과 상해에 돌아갈 방법에 대한 것이 전부다.

청홍이 자살했을때 가장 먼저 뛰어오는 사람은 엄마와 동네 상해인 아저씨들이고, 귀양을 떠나는 청홍 가족을 배웅하는 것도 상해인 친구 가족이다.

술취한 껀에게 강간당한 청홍은 자살을 시도하고, 이 가족은 새벽 상해로 도망간다. 도망가는 차에 짐 몇개 싣고 앉아있는 이 가족의 얼굴 위로 "사형수 껀"이라는 말과 함께 총소리가 난다.
아버지가 그리 닥달하지 않았다면 껀은 청홍에게 그리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어머니는 청홍의 자살 시도후 남편과의 이혼서류를 제출한다). 청홍은 대학에 갔을 것이고 그렇게 넋나간 표정을 짓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들은 결국 귀양을 떠나지만 허가된 귀향도 아니니 앞으로 (앞뒤 상황을 보아) 어떤 당연한 혜택도 정부로부터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린 남동생이 정식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이 부모가 어떤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청홍의 마지막 모습. 네이버에 찾아보니 고원원 예쁘다고 난리던데 난리칠만 하더라.

한국의 어떤 문인은 홍위병에게 끌려가던 노사선생을 운운하고 어떤 인은 연안문예강화를 지껄이며 얘기하고 어떤 이는 하방을 기억하자고 한다. 한국의 이들를 비웃는, 동떨어진 시간과 공간에 속한 나는 그저 배웠던 지식을 재배열해 야비하게 영화를 응시한다. 자, 이제 실패한 현지의 너희는 무슨 말을 내뱉을건데? 어떻게 과거를 후회할껀데? 어떻게 상처를 후벼팔껀데? 정확히 얘기하자면, 나는 이들이 실패했다고 말하길 바랬고 포기했다고 말하길 바랬다.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다. 이 모든 비극의 원인제공을 청홍의 아버지가 했는데도 영화가 진행될 수록 미워할 수가 없었다. 청홍의 어머니나 진진의 부모를 연기한 평범한 얼굴들이 아주 친근해졌다. 이들은 "아이들만 잘 크면 되요"라고 하지만 결코 "우리가 실패한건가"라고 의심하지도 않고 "그땐 어쩔 수 없었어"라고 합리화하지도 않는다.
왕 샤오슈아이는 엄정한 현실주의라거나 사실주의 따위의 관념적인 말이 개입할 틈 없이, 완벽하지도 않고 실패하며 추레한 "살아가는" 부모 세대의 이야기를 연민없이 말한다.
새벽녘 남들 눈에 띌까 도망가는 청홍 가족을 배웅하며 청홍과 진진은 편지할께를 약속한다. 진진의 어머니는 청홍의 남동생을 붙잡고 운다. "아줌마가 앞으로 너를 다시는 볼 수 없겠구나". 진진의 아버지는 허겁지겁 차문을 닫으며 "남들 눈에 뜨이기 전에 어서 가라"고 한다. 멀어지는 차를 향해 진진의 가족은 아주 오래도록 손을 흔든다.
누구탓이라거나 그땐 어쩔 수 없었지 등의 말을 기대하던 나는 당황해서 영화를 본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누구 때문에도 아니고, 시대가 그랬기때문이라고 하고 싶고, 어쩔 수 없는건 어쩔 수 없는거지, 영화속 현실일 뿐이지라고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지만 그저 저절로 눈물이 흐르더라.

어떤 것에도 이유를 돌리지 않고 왕 샤오슈아이는 담담히 영화를 맺는다.
부모세대에게 바칠 수 있다는 말은 이런 영화이기에 가능하다.
애정어린 감독의 시선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나는 왕 샤오슈아이가 좋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