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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산책/화어(2000년 이후)

지명과 춘교 (志明與春嬌; Love In A Puff, 2010)

by 주렁주렁™ 2010. 9. 8.
지명과 춘교; 지명여춘교 (志明與春嬌; Love In A Puff, 2010)

감독 : 팽호상
스토리 원안 : 팽호상
각본 : 팽호상, 맥희인(열일당공, ex의 감독)
음악 : 두곡지 
주연 : 양천화, 여문락, 장달명,
우정출연 : 곡덕소, 곡조림, 추기광




팽호상의 2010년작 <지명과 춘교>의 배경은 실내 흡연이 완전히 금지된 2월의 홍콩이다. 흡연가능장소로 수시로 모여드는 직장인들. 자연스레 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누다 괴담을 말하고 뒤이어 장지명(여문락)이란 남자의 바람 피운 애인 이야기까지 떠든다. 깔깔 거리는 이 무리 뒤로 한 남자가 역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끼어드는데, 뜻하지 않게 남의 연애사를 듣고 있던 춘교(양천화)는 그가 좀전 이야기의 주인공 지명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오월천의 동명 노래제목을 영화 제목으로 따온 <지명과 춘교>에는 모든 상황이 담배와 연관되어 있다. 사는 곳도 다르고 직장도 다른 완전한 타인인 지명과 춘교가 만나게 되는 원인은 누구의 소개가 아닌, 같은 흡연장소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름을 알게 되고 핸드폰 번호를 주고 받은 후 자연스럽게 문자를 주고 받고. 또 같은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고, 담배 때문에 함께 경찰에게 쫒기고, 술 마시다 담배 때문에 밖에 잠깐 나온 사이 서로 근처면 만나고, 함께이기에 건물 층계에서 몰래 숨어서 담배를 피우고, 계속해서 지명은 춘교의 담배불을 붙여준다.

팽호상은 담배를 매개체로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담배를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게다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제도에 갇힌 상황의 상징성까지 담아낸다. 이들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계속해서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고 덕분에 영화는 분명 흡연자 입장서는 끔찍한 상황인데도 시종일관 자연스럽고 무엇보다 자유로운 '분위기'를 공간으로 담아낸다. 그러면서도 팽호상은 중간중간 슬쩍슬쩍 이게 로맨스가 아니라면 흡연자에게 지옥인 사회를 아주 공포스럽게 환기시킨다.

특히 각본이 정말 좋다. 대사는 생생하면서 특별히 거슬리는 감정의 비약이 없을 뿐 아니라 상황상황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일상적인 "내일 봐요"로 인사한 뒤 둘만의 흡연장소서 담배를 피우다 "왜 유니폼 안 입었느냐?"는 지명의 질문에  "토요일 쉬는 날인데요. 어제 내일 보자고 했잖아요?"라 대답하는 춘교나, 왠지 좀 기쁘면서도 살짝 부담스러운 맘에 출근하는 줄 알고 그냥 인삿말로 한거라 한 뒤 "오늘 저녁에 뭐해요?"라 묻는 지명이나, "오, 데이트 신청?"이라 되받아치는 춘교나, "미친 거 아니에요? 무슨 데이트 신청?"이라 머쓱해하는 지명이나, 그래도 꿋꿋이 "데이트 신청? 데이트 신청? 데이트 신청?"라 강요(?)하는 춘교나....모든 게 너무나 사랑스러운 영화다. 그리고 무엇보다,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가 담아내는 홍콩이 못견디게 사랑스럽다. 아...정말 여행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영화다.

늘 불을 붙여주던 지명이 라이터를 건넨다. 춘교는 거리를 두려는 그의 맘을 그 행동으로 알아 차린다. 담배로 가까워진 이들은 이렇게 담배를 통해 머뭇거림을 전달하고, 또 담배를 사재기하려 돌아다니다 다시 만난다. 국민 건강을 위해 담배값을 인상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화면을 채우자 팽호상은 엄청 엄숙하면서 무서운 음악을 깐다. 깔깔깔. 그리고 이 둘은 각자 흡연자 친구들과 전화로 상황 보고를 받으며 담배가 남아있는 편의점을 찾아다닌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게 담배와 관련된 영화이면서 또 제대로 된 로맨틱 코미디이다.

덧1. 이 영화는 단 5일(일주일이었나? -_-) 간의 이야기다.
덧2. 이번 부산영화제서 상영된다. 너무나 맘에 들어서 간만에 자막을 만들어볼까 하고 있는데, 상영작에 포함됐다고 하니 어째야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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