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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산책/화어(2000년 이후)

17세의 하늘(十七歲的天空; FORMULA 17, 2004)

by 주렁주렁™ 2010. 5. 15.
17세의 하늘(十七歲的天空; FORMULA 17, 2004)
감독 : 진영용 陳映蓉
각본 : 부예촌 傅睿邨
주연 : 양우녕楊祐寧 , 주군달周群達duncan


<남색대문>의 계륜미는 다른 남학생을 짝사랑하는 친구에 대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고, <성하광년>의 장예가는 친구인 전효전을 좋아하지만 차마 표현하지 못하며, <먀오먀오>의 장용용은 좋아하는 일본인 교환학생 먀오먀오를 떠나보내며 펑펑 운다. 세 편의 대만영화 속 대만의 게이/레즈비언 학생들은각자 마음에 동성 친구 - 그것도 아주아주 친한 -을 품어만 두고 괴로워한다. 그렇다면 <17세의 하늘>의 주인공 양우녕은 어떨까?

감독인 진영용이 그리는 <17세의 하늘> 속 타이베이는 지나가는 행인으로도 등장하는 여자 한 명 없는 세계이다. 양우녕은 게이라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 하룻밤 유희가 아닌 연인을 만나고 싶어서 고민하며 주변의 친구들 역시 모두 게이이고 심지어 횡단보도 앞에서 만난 노인 역시 게이이다. 채팅 상대를 만나러 방학을 이용해 타이베이로 올라온 시골 동정남 양우녕이 피도 눈물도 없는 마성의 게이 던칸을 만나 반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과정을 그린 <17세의 하늘>의 세계는 양우녕이 자주 먹는 아이스크림처럼 달달하기만 하다. 개그 코드를 담당하는 양우녕의 게이 친구들은 과장되고 희화화된 모습으로만 거의 등장하며, 또 감독은 무게를 잡으려는 생각이 아예 없다. 던칸이 왜 그렇게 원나잇 스캔드만 즐기는 게이가 된 건지에 대한 설명 역시 코믹하기 그지 없다. 진정한 사랑을 믿는 순진한 처녀(숫총각)와 알고보면 상처가 가득한 바람둥이 남자의 사랑 이야기인 <17세의 하늘>은 10대 소녀가 쓴 순정만화 같은 영화다. 솔직히 이 둘의 헤어지는 과정은 장르의 공식에 충실할 뿐, 묘사나 계기나 이야기나 아주 형편없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웃게 된다. 미소가 떠나질 않는 영화다. 가슴이 두근거리다 못해 연애하고 싶어진다. 그 이유는 진용용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두근거림, 좋아하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의 그 두근거림을 너무나 생생하게 잡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남도 아니고 예쁘지도 않고 정말 평범한 반팔, 반바지, 배낭 차림의 양우녕이 결국은 못내 사랑스럽게 보이고 바람둥이 역의 던칸 역시 귀엽게 느껴진다. 심하리만치 듬성듬성한 각본에, 정말 없는 돈으로 만든 게 느껴지는 전혀 화려하지 않은 배경 - 독립영화로 제작, 대만서 흥행에 성공했다 - 에, 때로는 비웃음이 나기도 하지만.....<17세의 하늘>은 참 유쾌하고 달달하다. 그 몫의 대부분을 해내는 건 양우녕과 거의 도배되다시피 한 여러곡의 대만 노래들이다.

한 마디로 참 예쁘고 기분 좋아지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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