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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산책/화어(2000년 이후)

옥관음 (玉觀音; Jade Goddess of Mercy, 2003)

by 주렁주렁™ 2010. 3. 14.
옥관음 (玉觀音; Jade Goddess of Mercy, 2003)

감독 : 허안화
원작 : 해암
각색 : 안서
주연 : 조미(안심), 사정봉(모걸), 유운용(양서)


허안화 최초의 북경어 영화인 <옥관음>은 허안화 감독 인생에서뿐 아니라 각색가인 안서 경력에서도, 본인이 인터뷰에서 "내가 다시는 다른 사람의 작품을 각색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난 광동어 시나리오에 어울린다"고 밝혔듯이, 실패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모두 실패한 <옥관음>은 대륙의 베스트셀러인 해암의 원작을 영상화 했고 영화가 발표된 전 해인 2002년 중국에서 드라마로 방영돼 높은 시청률을 올렸다. 드라마 각본은 원작자인 해암 본인이 직접 썼다.

말로만 듣던 <옥관음>이 지난 달 번역되어 출판된 사실을 어제 알았고 생각난 김에 드라마 자료를 찾던 중 "중국어를 모른다면 배워서라도 꼭 봐라"는 리뷰를 읽었다. 곧장 드라마 시청에 돌입, 4화까지 달렸는데(총 27부작) 도저히 궁금증을 참을 수 없어 영화를 보게 됐다. 그게 전혀 관심없던 영화 <옥관음>을 보게 된 이유다.

돈은 많지만 잔소리 심한 애인을 둔 바람둥이 양서(유운용)에게 삶은 무료하기만 하다. 애인의 감시 덕에 바람을 피우기 힘들지만 애인 덕에 풍족한 삶을 누리는 양서는 어느날 태권도 학원에 예쁜 여자가 있다는 소식을 접수, 곧장 학원에 등록해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예쁜 얼굴의 청소 담당인 안심(조미)는 양서의 데이트 신청을 계속 거부하고 화가 난 양서는 추태를 부리지만 어찌저찌해서 둘은 가까워진다. 애인에게 불려간(애인이 양서의 상사) 양서가 안심을 사랑한다며 파혼을 요구하자 애인은 "그 여자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느냐"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알고 봤더니 그토록 양서의 눈에 순수 그 자체였던 안심은 이미 애가 있는 미혼모였던 것.

영화는 여기까지의 과정을 일사천리로 보여주지만, 드라마는 다르다. 27부작이란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 드라마에서 원작자이면서 각본을 직접 쓴 해암은 양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심리를 자세히 묘사한다. 운 좋게 공장장 아버지에게서 태어나 풍요롭게 자라고 얼굴 괜찮은 덕에 가만히 있어도 여자가 저절로 꼬이는 이 남자는 숱한 여자와 놀았고 약혼녀도 있지만 공허하기만 하다. 캐나다에서 시작되는 드라마는 결혼식을 앞둔 양서가 파혼 선언을 하는 내용이 1화이다. "계속 내 마음 속에 한 여자가 있다"는 이유로. 그는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그 여자를 찾아 나서는데, 이런 그의 현재와 그가 사랑한 여자와의 만남을 그린 과거가 교차 진행된다.

영화의 실패는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드라마가 양서의 시각으로 안심이란 미지의 여자를 하나씩 묘사한다면, 영화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다.


허안화를 움직인 건 '극단적인 비극감'이었지 양서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니었다. 때문에 영화는 사정봉이 연기한 극단적인 비극감의 주인공 모걸이 주연이다. 덕분에 희생되는 건 양서라는 캐릭터인데, 영화에서는 정말 매력이 없다. 그냥 양아치다. 안심과 양서가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 둘의 캐릭터는 함께 죽어버리는데, 이 둘이 서로 사랑하는 건지, 왜 저러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드라마 팬 입장에서는 아마 열불이 터졌을 것이고, 원작과 드라마를 모르는 홍콩 관객 입장에서는 '왜들 저래' 싶었을 거다.

스포일러가 되니 다음 부분부터는 그 점을 유의해주시고.

안심(조미)이 편지를 통해 밝힌 그녀의 과거는 이렇다. 경찰 학교를 졸업한 안심은 본인이 지원해 남덕이란 지역의 마약 단속반에 들어간다. 마약 생산의 본거지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이 곳에서 안심은 경찰이란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마약상에 대한 증오(?)를 더해간다. 결혼을 약속한 애인은 한 달에 한번씩 8시간 걸려 기차로 그녀를 만나러 오는데 기자인 그는 이 곳에서 할 일이 없고, 안심에게 위험하다며 자신이 사는 지역으로 옮길 것을 종용하지만 안심은 이를 거절한다. 어느날 안심은 우연히 모걸이란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의 집에 들어가 젖은 몸을 닦을 수건과 옷을 빌리게 된다. 옷을 돌려주려 만난 두 사람은 그 후에 몇 번 더 만나게 되고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자신을 체육교사라 밝힌 안심은 약혼자가 있다며 그만 만나자 하나 모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어느날 마약 접선책을 잡으러 간 안심은 접선책이 모걸이란 걸 알게 된다.

취조실에 잡혀있던 모걸이 뛰쳐나와 안심에게 달려가는 순간, 안심은 상사에게 "이 지역에서 아무하고나 가까워지면 안된다고 누차 말했지" 혼나게 되고, "그 남자 집은 아냐"는 상사의 질문에 예전 옷을 잠깐 빌려입었을 때 들어갔던 그의 집을 말한다. "안돼, 안돼!"라고 외치는 모걸의 울부짖음은 제발 자기 집을 말하지 말라는 의미다. 결국 모걸의 부모는 사형당하고 애인과 결혼해 애를 낳은 안심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 모걸과의 잠자리 사실이 변호사에 의해 까발려지게 된다. 모걸은 그 재판으로 석방되고 집으로 돌아온 안심에게 남편은 친자확인 검사를 했다며 자기 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때까지 안심 본인도 모걸 아이였는지는 몰랐던 상태. 석방된 모걸은 형과 함께 자신의 가족을 망가트린 안심에게 복수하러 오고 그 와중에 남편이 총에 맞아 죽는다. 결국 안심은 애를 데리고 북경으로 도망쳐 이름까지 바꾸고는 숨어살게 된다.

여기까지가 안심이 편지에서 밝힌 과거다. 허안화가 말한 비극성은 이 다음인데, 쓰다보니 이게 무슨 줄거리 정리하는 리뷰도 아니고....

양서와 행복하게 살기로 한 안심이 잠깐 남덕에 들르게 되고 다시 모걸 형제가 방문한다. 안심은 모걸의 형을 쏘고, 모걸은 양서를 쏘고는 애를 인질로 데려간다. 경찰은 모걸의 형이 죽었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쳐 애와 맞교환 할 계획을 세우는데, 전화를 걸어온 모걸의 "나는 부모, 너는 남편. 나는 2개를 잃었고 너는 1개를 잃었는데 애까지 잃으면 너도 2개로 공평해지는군"란 말에 안심은 결국 네 아이라고 말하게 된다. 아이를 살리려면 혼자 오라고 알려준 약속 장소로 안심이 찾아가는 도중 경찰은 모걸의 차를 발견하고 트렁크를 열어 본다.

두 사람이 연애할 때 함께 왔던 그 장소에서 각자 총을 가지고 만난다.
"아이는 이미 죽었지?"
"우리 형은 이미 죽었지?"
대답하지 않아도 이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본 순간 각자가 바라는 사람이 죽었음을 안다. 남편을 죽일 때 안심도 죽이려던 형의 총을 막던 모걸은 이제 안심에게 총을 들이대며 말한다.
"내 아이가 아니라고 말해, 그럼 살려줄께."

허안화가 반한 비극성은 이 부분일 것이다. 우연히 만나서 좋아하게 된 여자가 경찰인 줄 몰랐고, 그저 젖은 옷 갈아입을 수 있게 새 옷 잠깐 빌려주러 집에 들였다 부모를 잃은 남자. 부모를 잃고 형을 잃고 더이상 잃을 게 없어진 남자가 핏줄을 죽게 만든 여자에게 복수하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 자신의 손으로 남은 핏줄을 죽였다는 진실을 알게 되는 남자.

유부남이 되기 전의 사정봉은 정말이지 반짝반짝하다. <옥관음>에서도 마찬가지다. 화면에 있는 것 만으로도 이야기가 저절로 생기는 느낌이다. 그에 반해 지금은 생기 없이 그냥 주연급 배우 중 하나일 뿐이고.

사정봉이 연기한 모걸의 비극성이 뇌리에 남아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조미가 연기한 안심은 말 그대로 모호하다. 이 영화로 조미가 연기력 논란을 겪었는데 영화 자체의 원인이 크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중국 경찰은 이상하게 멀다. 외부인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느낌이 묻어난다. 그래서 왜 안심이 저렇게 자신의 직업에 애착을 가졌는지, 왜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그 일을 선택했는지, 양서를 사랑한 건지 아니면 편하게 살고 싶어 정착하려 한건지, 남편을 사랑해서 결혼한건지 아니면 마약상인 모걸과 결혼할 수 없으니 남편을 선택한 건지....모든 게 모호하다. 그저 확실한 건 모걸이란 인물의 비극적 인생일 뿐이다.

* 제목인 "옥관음"은 안심이 걸고 있는 목걸이, 옥으로 만든 관음상을 가리킨다.
** 4화까지 본 드라마 옥관음 시청 소감은...정말 재밌더라.
*** 원작을 살까 고민 중. 올해 더이상 책을 안 사기로 굳게 결심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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