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A Letter From An Unknown Woman, 2004)

미지의 여인으로부터 온 편지
감독 : 서정뢰
출연 : 강문, 서정뢰, Baomo Zhang



"남자의 하룻밤 여자의 일생" 이런 구태의연한 포스터 카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선택한건 서정뢰라는 배우-감독, 각본, 여주인공까지 해낸- 때문이다. 링크한 씨네21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전에 이미 유명한 영화로 만들어졌고 원작 또한 꽤 유명한가 보다.
미지의 여인이라기 보다는 "낯선 여자, 완전히 모르는 여자에게 온 편지"(미지의 여인이란 왠지 설레는 느낌이 베어있다고나 할까? 나는 모르는 여인에게 온 편지란 표현이 더 냉정하다고 본다)란 이 영화에서 서정뢰는 원작을 근대 중국으로 옮겨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막없이 영화를 봐서 내용의 1/3도 따라가지 못했다. 내용을 잘 모르는 대신 화면에 집중할 수 밖에 없어 그게 장점이 됬다.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되고 담담한 여인의 목소리가 화면에 깔린다. "당신은 나를 모르겠지요, 우리의 아이가 죽었습니다"로 시작되는 서정뢰의 목소리를 따라 그녀의 편지를 우리는 보게 된다.
옆집(혹은 옆방)에 이사온 바람둥이로 묘사되는 남자(<붉은 수수밭>의 주인공이며 <햇빛찬란한 날들>, <귀신이 온다>의 감독인 강문)를 사모하던 소녀는 여인이 되서 다시 이 남자의 근처로 찾아온다. 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얻는데 성공한 듯 보이지만 남자는 곧 떠나서 여자를 찾지 않고, 그 남자의 애를 낳은 여자는 시간이 흘러 다시 이 남자의 근처에 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 남자는 이 여자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여자는 남자의 생일때마다 익명으로 늘 흰장미꽃을 보낸다.
처녀때 그 남자가 사는 그 방에서 함께 잠들고 다음날 거울 앞에 섰던 그녀는, 이제 화려한 모습으로 다시 그 남자와 그 방에서 잠들고 다음날 거울 앞에 선다. 문틈으로 그를 응시하던 소녀가 그 방에서 처음 잠들고 다음날 거울앞에서 옷매무새를 만졌을때...서정뢰는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 여자'를 보여준다. 그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저 여자가 얼마나 행복할까?
그리고 이제 그의 애를 낳고 그녀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그와 다시 잠들고 이 거울앞에 서서 귀걸이를 끼우는 그녀는 거울 속에서 그녀의 핸드백에 돈을 넣어주는 남자를 보게 된다. 방 탁자에는 이 여자가 보낸 장미꽃이 화병에 담겨있다.
매춘부인 그녀는 백을 들고 그의 방문을 나오다 그의 하인과 마주친다. 소녀였을때 그녀와 놀아주던 그 하인은 노인이 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아가씨"라고 부른다. 아무도 모르는 이 낯선 여자는 예전의 그녀를 알아보는 노인 앞에서 처음으로 흐느낀다. 서정뢰는 통곡하지도 않고 그저 그 남자가 넣어준 돈을 꺼내 하인이 들고 있는 화분에 끼워주고는 나와버린다.
"당신은 나를 모르겠지요 우리의 아이가 죽었습니다" "당신은 나를 모르겠지만 이제 당신의 생일에 오던 꽃은 없겠다는 것은 알겠지요" 그러면서 빈 꽃병을 보여준다.

제대로 해석을 못해서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편지가 배달된 날은 이 남자의 생일이고 편지는 그녀가 죽기전에 썼다는걸.

볼때는 괜찮네 이랬는데 보고나서는 계속 마음이 아프다. 남자는 편지를 읽고 또 읽어도 그녀가 누구인지 전혀 생각이 안날꺼다. 죽어서까지 남자에게 정말 모르는 그녀, 서정뢰가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