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는 <최가박당>시리즈로 유명한 스타배우이면서 이제는 감독이기도 하다. 감독으로서 그녀는 <소녀, 소어>로는 아태영화제에서 그랑프리와 소어 역 유약영의 여우주연상을, <심동>으로 <첨밀밀>이 세워놓았던 멜로 기록을 바로 깨버렸다.
그리고 어렵사리 제작비를 구해 만들었다는 <20 30 40>을 며칠 전 봤다. 감상평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관심있는 배우가 감독이 되고, 그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진화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은 팬으로써, 굉장히 행복한 일이다." 오랫만에 보는 좋은 영화였다. 영화설명 기사를 찾다보니, 내가 받은 느낌과 많이 다르다. 어설픈 해피엔딩이란 지적은 영화를 제대로 안봤다는 느낌. 편집부분은 나도 아쉽긴 했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21G 식의 교차편집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런 식의 시간순 편집이 평이하게 느껴진 것 같다.
이 영화의 장점은 20대 30대 40대 여성들의 삶을 요란하지도, 냉정하지도 않게 따뜻히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는 점이고, 그 시선을 표현될 수 있었던 데에는 장애가 자체의 능력과 더불어 스토리를 제공한 다른 두 주인공 유약영과 이심결의 힘도 크다. 이 세 주인공을 보필(?)하는 조연들-황추생, 임현제, 양가휘-과 함께 여타 홍콩영화에서 보기 힘든 간결한 편집으로 영화는 빛을 발한다.
20대 여자 이심결. 이심결은 <디아이>로 이름을 알린 말레이시아 화교 가수로, 노래를 아직껏 한 번도 못들어봤다. 꽤 유명하고 예쁘장한 얼굴인데 <디아이>를 안봐서 그런가 굳이 찾아들어야지 하는 생각은 안든다. 그래도 디아이 처음 광고 봤을때 엄청 눈크고 이쁘게 생겼네 이런 느낌이었다. 극중 이심결 역시 가수가 되기 위해 말레이시아에서 대만으로 온 가수지망생. 여성듀엣으로 계획이 세워지고 다른 멤버와 한 방에서 기거하게 된다. 아무 연고없이 단지 가수가 되기 위해 대만으로 온 말레이시아 출신의 이심결과 마찬가지 상황인 홍콩 출신의 룸메이트, 이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이심결을 동성애 식으로 묘사해 놓은 소개글은 아니라고 본다) 이심결은 정말 가수가 되고 싶지만, 막상 무대에 설 일도 녹음하는 일도 없고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면 다시 단순직 업무로 복귀 평범하게 살아야 한다는게 싫다. 집에 전화하면 엄마의 걱정과 반대하는 아빠의 눈치를 보느라 허겁지겁 전화를 끊어야하고, 이런 그녀에게 유일하게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는 룸메이트 뿐이다. (내가 해석하기에) 룸메이트는 이심결에게 "나랑 섹스할래?"라고 말하고, 이심결의 무언의 거절을 본 후 룸메이트는 남자친구를 만든다. 이걸 바라보는 이심결은 묘한 감정을 느끼고... 결국 이심결과 룸메이트는 무대에 한 번 서보지도 못하고 돌아가게 된다. 스튜디오에서 이제 망한거라는 황추생에게 "데모테입을 만들자, 내가 부르겠다" 라며 이심결은 녹음실로 들어가 노래를 부르지만, 잔인하게도 장애가는 그 장면을 무음으로 처리한다. 이제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는 이심결은 말하지 않아도 일상으로의 복귀라는 걸 알고있다. 절망도 아니고 희망도 아닌, 그렇게 장애가는 슬쩍 비껴서서 '이들이 실패했지만 그래도 청춘만으로 아름답다'식의 감언이설을 내뱉지도 않고 그저 삶이 계속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오히려 보는 이에게 앞으로 이심결은 어떻게 해야하나, 아빠에게 뭐라고 말할거지 등의 마음아픔을 느끼게 하면서 말이다.
스튜어디스가 직업인 30대의 유약영은 각각 유부남과 연하청년 애인 둘을 데리고 있다. 사랑받지만 외로운 그녀. 유약영을 휘감는 감정은 바로 '외로움'이다. 피하는 그녀를 보다 못한 연하 애인은 그녀 차 유리를 다 박살내버리고(이 부분을 보면서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는 정말 양호한 거였구나 느낌) 이런 그를 보면서 유약영은 20대의 자신- 애인더러 나오라며 애인차 유리를 박살내는-을 떠올린다. 당시 그녀때문에 차 유리가 부숴진 유부남 애인은 쿨한 관계로 그녀에게 매달리지만 역시 그녀는 불안할 뿐이다. 결혼하자는 연하애인과 계속 만나자는 유부남 사이에서, 그녀는 결국 이사하고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혼자 사니까 외롭지'식의 단순한 외로움이 아닌,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깊은 그녀의 외로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미묘하면서도 처절한 외로움을 장애가는 너무나 세심하게 잡아내고, 유약영은 너무나 적절하게 표현해낸다. 오랫만에 만난 좋은 배우, 오랫만에 팬이 되버린 배우, 유약영 너무 좋다.
남편과 자식밖에 모르는 40대 꽂집 주인 장애가. 우연히 종업원 대신 꽃배달을 가게 되고, 그집에 걸린 남편과 정부의 가족사진을 보게 된다. "40대에 새로운 남자를 찾는다는게 쉬운지 아니?"라는 친구들, "엄마 꼭 이혼해야 되요?"라는 딸, "이혼까지 바라지는 않아"라는 남편을 무시한 채 그녀는 이혼한다. 이제 거울앞에 홀로 선 그녀(장애가 등장씬에는 유독 거울앞에 선 모습이 많다)는 그간 몸바쳤던 것을 가족을 잃고 새로운 남자와 경험을 찾아보려 하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장애가를 휘감고 있는 감정은 허무감과 불안감이다. 식물인간 여자환자 간호를 자원봉사로 하고 있는 장애가. 처음에는 신문을 읽어주던 그녀는 이혼했다는 말을 시작으로 자신의 얘기를 하게 된다. 이제 누워있는 그녀에게 장애가는 손톱을 깍아주고 얼굴에 팩을 해주고 생일케잌을 준다. 장애가는 연하의 임현제와 사귀기도 하고 동창인 양가휘한테도 꽤 작업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다. 그녀는 이제 스스로 운동복을 입고 홀로 아침을 달린다. 지나가는 조깅족들에게 인사하는 그녀의 경쾌한 목소리와 발걸음 소리를 끝으로 영화는 끝난다.
장애가는 <심동>에서 감독으로 등장, 영화 속 영화로 금성무와 양영기의 이야기를 하는것 같더니 마지막부분에서 자신의 이야기였다 며 슬쩍 반전을 꾀한다. 이 영화에서 장애가는 40대 여인으로 나와 세 주인공 중 한명으로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있어야할 자리를 정확하게 집어내고, 그런 그녀에게 감독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겠다는 생각도 든다. 짐작하건데 꽤 오랫동안 스타였던 나이든 그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한정돼 있을 것이고, 때문에 자신이 주인공(이나 비중있는 역)으로 등장하려면 감독을 할 수 밖에 없었겠지..라는. 덕분에 나는 팬으로서 그녀의 현재 모습을 보게 되고, 그녀 나이대의 여자가 바라보는 삶을 그녀시각으로 직접 듣는 것이 진심으로 반갑다. 주름이 얼굴에 드리워지고 많이 늙어버린 그녀는 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