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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산책/화어(2000년 이후)

줄리엣과 양산백 (朱麗葉與梁山伯; Juliet In Love, 2000)

by 주렁주렁™ 2013. 4. 9.
줄리엣과 양산백 (朱麗葉與梁山伯; Juliet In Love, 2000)
 감독 : 엽위신
 각본 : 추개광, 엽위신
 촬영 : 임화전
 음악 : 위계량
 출연 : 오군여, 오진우, 갈민휘, 임달화, 유이달, 임설


드디어 봤네 ㅎㅎㅎ. 가끔 이 영화를 걸작으로 꼽은 홍콩쪽 글을 접했기에 궁금했던 영화다. 글쎄다...단점이 많이 보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은 든다. 어쩌면 십년 이십년 뒤에 이 영화가 2000년대 홍콩의 걸작 멜로로 화자될지도 모르겠다는 가능성? 

암으로 유방절제수술을 받은 오군여는 남편과 이혼 후 팔순 할아버지와 살면서 음식점 접수처에서 일한다. 십만 달러 빚이 진 오진우의 모습은 그냥저냥 답없는 삼류도 못되는 양아치같다. 우연히 만난 이들은 또 다른 우연으로 남의 아이를 잠시 맡으면서 어쩔 수 없이 한 공간에 머물게 된다. 80분이 약간 넘는 이 영화는 무엇보다 음악이 참 나쁘고 내용 역시 통속적이다. 상처 깊은 30대 여자와 역시 상처 깊은 30대 남자의 사랑 이야기. 결말 역시 통속적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영화는 통속적인데도 묘한 힘이 있다. 굳이 표현하지 않는 큰 상처를 짊어진, 그닥 멋져보이지 않는 캐릭터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있다. 나는 이게 감독인 엽위신의 힘인지 아니면 배우들의 힘인지 모르겠다. 코미디 영화에서 주로 봤던 갈민휘가 오군여를 짝사랑하는 평범한 남자로 등장해서 별 대사 없어도 가슴찡한 모습을 보여주고 주인공인 오진우 역시 내가 기존에 싫어했던 그의 신들린 연기스타일에서 힘을 많이 뺀 연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주인공인 오군여의 생활 연기가 영화 내내 내 주변에서 튀어나온 듯한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다. 오군여가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건 알고 있었다면 감탄스러울 정도로 평범한 캐릭터를 표현해낸다. 또 이들 뿐 아니라 조폭 형님으로 등장하는 임달화나 왠지 미운 유이달, 임설까지 모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빛이 난다. 대사가 많지 않은데도 모든 캐릭터가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걸로 다가온다. 

그리고 또 하나, 이 영화에 계속해서 나오는 공간. 이 공간이 굉장히 탁월하다.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 꼭 홍콩 같기도 하다. 이 홍콩이 거대 도시숲 홍콩이 아니라 그런 번화가와 떨어진 작은 마을, 호수, 조각배, 갈대숲, 나무길....예전 홍콩영화에서 자주 보던 공간들이 계속 펼쳐진다. 그렇다고 공간이 영화보다 더 튀는 것도 아니다. 공간과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아름답다. 배경이 예쁘고 폼나고 화려해서 아름다운게 아니라, 사람이 살아있는 공간으로 다가와서 아름답다. 상처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 발로 뛰고 걷는 공간이라 아름다워.

그러니, '아니 이렇게 탁월하게 공간과 캐릭터를 집어내는 능력이 엽위신에게 있었다니! 그럼 각본(의 중심 이야기)과 음악은 왜 저런건데?'란 의문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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