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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산책/화어(~90년대)

신독비도(新獨臂刀: New One-Armed Swordsman, 1971) - 지기(知己)의 의미

by 주렁주렁™ 2006. 9. 7.
신독비도 (新獨臂刀: New One-Armed Swordsman, 1971) 
홍콩    
감독 :  장철
출연 :  강대위, 적룡, 리칭

장철의 영화는 아주 단순하다. 왕우 주연의 독비도는 영화가 시작하자 주인공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죽고, <신독비도>에서는 주인공이 팔을 자른다. 무협물을 비롯한 많은 영화들에서 복수란 주인공이 필연적으로 행할 수 밖에 없는 행동이고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가장 간단한 예는 부모를 잃었을 때고 친구나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을 잃었을 때도 역시 많다. 자신의 혈육이 억울하게 죽은 경우 사람은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 이때의 복수는 선택의 성질과는 다르다. 작은 은혜를 입은 사람과 관련된 복수도 어찌보면 마찬가지다.
<신독비도>는, 내가 보기에 약간 성질이 다르다. 주인공인 강대위와 적룡은 잠깐 스친 사이라고 할 정도로 인연이 짧다. 시간의 길이가 정의 깊이와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복수를 실천할 정도의 길이는 되어 보이지 않는다. 미운정 고운정이 쌓이고 나야 비로소 제대로 된 인간관계가 될 수 있다고 믿는 나에게 이런 부분은 꽤 낯설기까지 했다. 이런 짧은 만남을 누구는 사랑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면을 확대시킨다면 이 영화는 퀴어영화로 보이기까지 한다. 그럼 왜 강대위는 죽을 위험을 무릅쓰고 복수를 꾀하는가? 적룡이 은인이었기 때문에? 적룡에게 도움은 받지만 굳이 안받아도 되는 작은 일이다.

강대위가 복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건 적룡이 지기(知己)이기 때문이다. 지기란 무엇인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다. 나를 낳아줬기에 아는 것이 아니라, 나를 알고 은혜를 베풀어 줬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알아준 지기'를 위해서 강대위는 칼을 든다. 때문에 그의 얼굴은 왕우처럼 비장하지 않고 결연하지도 않다. 강대위의 얼굴은 슬퍼보이고, 마지막 순간에도 망설임이 엿보인다. 때문에 그의 얼굴은 낯설지 않고 때로는 가슴이 아리기까지 한다.
지금과 그때는 시대가 다르고 환경이 틀리고 사람이 다를지도 모른다. 현재가 배경이면 유치할 수 있기에, 반드시 과거 어느 시대로 설정되는지도 모른다. '나랑 다르니까' 이렇게 간단히 말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 그게 내가 장철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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