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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산책/화어(~90년대)

망명원앙(亡命鴛鴦; On The Run, 1988)

by 주렁주렁™ 2011. 6. 25.
망명원앙(亡命鴛鴦; On The Run, 1988)
감독 : 장견정
각본 : 황굉기, 장견정 黃宏基 張堅庭
촬영 : 오지군 敖志君
주연 : 하문석, 원표, 진상림, 진옥련, 원화, 라열 


<망명원앙>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말단 형사인 원표는 이혼 수속 중인 아내가 어이없이 킬러에게 살해되고 마는데, 오히려 살인범으로 몰려 킬러와 함께 도망치는 사이가 되고 만다. 보통의 이야기라면 도대체 원표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는 배후 세력이 무엇인지, 그걸 원표가 어떻게 알게 되며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지에 집중할거다. 허나 감독인 장견정은 이 표면적인 이야기에 전혀 관심이 없다. 

장견정이 하고픈 이야기는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가에 대한 원인이다.  당연히 홍콩 느와르 팬이라면 '홍콩반환'이란 현실이 자연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망명원앙>이 여타의 홍콩 느와르와 다른 점은 '홍콩반환'이란 현실에서 그치지 않고, '이민'이란 현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88년도 영화이고, 홍콩은 97년에 중국으로 반환됐다. 한창 우리나라가 88올림픽이란 행사로 바쁜 세상이었을 때, 이제 반환이 먼 미래가 아닌 10년 앞으로 다가온 '바꿀 수 없는 현실' 앞에 선 홍콩이 <망명원앙>의 주인공이다. 

만약 죽음을 앞둔 암환자 처지라면 당사자는 앞으로 어떤 치료를 받게 될지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짐작할 수 있다. 환자가 가지는 건 치료에 수반되는 고통과 죽음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만약 전쟁이란 운명에 처한 사람들이라면 언젠가 이 전쟁이 끝나 아비규환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홍콩의 반환은 다르다. 이제 10년 뒤면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며 그걸로 끝이 아니라 죽을때까지, 심지어 내가 죽을때까지도 아니고 내 자식 내 손자 내 후손들까지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중국인이란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세계가 어떻게 바뀔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79년에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80년 등소평의 복권 이후 개방정책을 쓰긴 했으나 88년의 세계(그리고 홍콩)에 비친 중국은 여전히 모호하며 철의 장막이다. 반환 후의 삶이 어떤 식으로 변화할지 상상할 수도 없는 막막함 수준이 아니라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인 것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그래도 같은 민족인데, 같은 사람 사는 처지인데 설마 죽기야 하겠어 란 긍정으로 버티던가 아니면 홍콩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로? 도대체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가서 뭘로 먹고 살아야 하는가? 그래, 외국에 친척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조금은 안심이 될거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된다. 돈 많은 인간들이야 이민을 가도 그 돈으로 뭐든 새로 시작할 수 있고 또 그 돈으로 시작하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살 수있다. 그럼 돈이 없는 사람들은? 최대한 돈을 만들어야 된다. 반환 전에. 무슨 짓을 하든. 설사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될 짓이라도. 88년이라면 이제 돈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이 일반인에게 고작 10년 남았다. 그 10년 동안 죽어라 모아봤자 복권에 당첨되지 않는 한 모을 수 있는 돈이란 빤하다. 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그래서 <망명원앙>의 악당들은 지름길을 택한다. 뺏으면 되는 거다.

주인공인 원표가 이혼 수속 중인 아내인 진옥련을 만난 영화 초반부 하는 말은 당신이 이민 가면 나 좀 초청해달란 말이다. 아내가 죽었단 소식에 이제 나는 이민을 못가게 됐다는 말을 내뱉는다. 연인인 진옥련을 죽이고 방해가 될 인간들을 제거한 후 결국 마약 판매 돈을 손에 넣은 진상림과 그의 동료들, 이 다섯명의 형사들은 돈을 쥐며 미친 듯이 웃는다. 이상하게도 그 웃음은 한참 지속되는데도 어떤 기쁨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 이만큼 손에 넣었으니 그만해도 되는건가 싶은 안도감이 느껴질 정도다. 복수하러 온 원표에게 진상림이 하는 말을 보라. 아들이 있는 외국으로 나가기 전에 돈을 모을 목적으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진상림에게 느껴지는 건 악행을 저지른 이유에 대한 뻔뻔한 합리화가 아니라 '분노'이다. 도대체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 이 나라에서, 죽어라 범인을 체포하며 성실히 일했지만 지금 남은 것은 무엇이며, 앞으로 이 나라가 나에게 약속해줄 수 있는 청사진은 뭐란 말인가? 진상림의 분노는 당연히 장견정의 분노이기도 하다. 이들은 썩을대로 썩은 부패 경찰과 다르다. 이들은 반환이란 미래 앞에 이민이란 수단을 실현하기 위해 '부패'를 선택한 사람들이고, 감독이 설명하고 싶어하는 홍콩인들이다. 그러니 당연히 주인공인 원표는 주인공이 아니라 <원앙호접> 속 사건을 진행하기 위해 등장한 제일 등장장면이 많은 배역일 뿐이다. 

또 원표의 미미한 존재감은 그가 무협물이란 활동무대에서 느와르로 옮겼기 때문이 아니다. 각본에서부터 의도적으로 그렇게 설정된 캐릭터이다. 원표는 아내가 죽자 딸아이를 찾아 안전한 장소에 숨긴다. 그런데 이상하다. 보통 부정을 보여줄 이 부분에서 어린 딸 린과 교감하는 건 린의 엄마를 죽인 킬러 하문석이다. 원표는 부상으로 잠만 잔다. 그럼 하문석이 단순히 여자라서? 악당이 린을 잡고 린의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고 있자 하문석은 망설임 없이 권총을 꺼내더니 "린, 도레미"라 말한다. (윗 사진장면) 그러자 하문석과 그 짧은 시간을 함께했을 뿐인 린은 바로 고개를 좌측으로 꺽고 하문석의 총은 불을 뿝는다. 린은 진옥련의 딸이지만 오히려 하문석과 묘하게 닮았다. 외모가 아니라 캐릭터가. 하문석은 명중률 100%의 킬러이며 영화 내내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한다. 그런데 그런 기술을 빼면, 마치 성장을 어느 순간 멈춘 듯한 린과 같은 순수함을 보여준다. 굉장히 맑은 느낌을 준다. 그러니 린과 친해지는 것도 당연하고, "린이 좋으니까"라며 부녀의 도주를 도와주는 것도 의문없이 납득하게 된다. 그게 하문석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가진 묘한 매력이면서 힘이다.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한 원표와 진상림 캐릭터의 반대편에 존재하던 린과 하문석은 고요하게 존재해다. 그러나 <망명원앙>은 결국 린까지 죽이면서 일말의 희망까지도 제거한 채 극단의 절망을 보여준다. 린의 죽음 앞에서 조용하던 하문석 역시 분노로 총을 든다. 이 지옥에서 함께 절망하고 분노하지 않으려면 린처럼 죽음으로 퇴장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망명원앙>을 지배하는 건 절망과 분노이다. 그리고 그 끔찍한 감정이 관객인 나의 가슴을 찢어놓는 것 같았다. 홍콩 느와르 보면서 이런 감정 느껴보기 오랫만이다. 나도 88년에 홍콩에서 살고 있었다면 진상림 들과 별반 다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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