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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산책/화어(~90년대)

가자왕 (蠍子戰士 ; Operation Scorpio, 1992)

by 주렁주렁™ 2021. 1. 31.

가자왕 (蠍子戰士 ; Operation Scorpio, 1992)

감독 : 여대위

각본 : 진자혜, 황병요, 여수봉

촬영 : 황보문、증자총

무술고문 : 유가량, 원규

무술지도 : 원덕

주연 : 전가락, 유가량, 원진, 나미미

글을 안 쓴 지 꽤 오래되었다. 영화 리뷰이든 책 감상이던. 
처음에는 그저 sns의 매력에 빠져 있을 뿐이라 생각했다. 언제든 마음 먹으면 다시 리뷰를 쓸 수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시간은 계속계속 흘렀고 최근 나는 절절하게 깨달았다.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거라고. 나는 못 쓰고 있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고. 

깨닫고 나니 이 상황을 어찌 해결해야 하나, 막막한 와중에 이것저것 떠올려 보았다. 그러다 생각난 게 이 블로그이다. "글 쓰기 재활 치료"라는 이름을 붙이고 얼마나 꼴 사나운 글이든 우선은 길게 쓰는 습관 들이기를 첫 번째 목표로 삼기ㅇ로 했다. 

그리하여 영화 리뷰를 적기로 결심,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 부담스럽지 않은 영화를 골라야겠다 싶었는데 그때 눈에 들어온 영화가 바로 [가자왕]이다.

[가자왕]은 내용도 모르고 주연도 모르며 어떤 장르의 영화인지도 몰랐는데도 제목만은 아직까지 기억하는 영화이다. 나에게 이와 비슷한 경우로는 [요수도시]와 [기문둔갑] 이 있다. 세 편 다 줄거리를 전혀 모른다. 이참에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기도 하여, 또 기대가 없기에 부담이나 실망도 없으리란 판단 하에 [가자왕]을 골랐다. 

영화 감상 시작하고 20분 쯤 지나서 이 영화로 리뷰를 쓸 수 있을까? 란 의문이 싹텄다. 좀더 지나자,  감독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아주 잠깐이지만 진심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알아서 뭐하겠는가. 감독이 뭔 생각을 했던 말던. 알아봤자 복장만 터지겠지.  

[가자왕]은 192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홀아버지와 가난하게 사는 소년 옥서(전가락)가 무공을 연마해 영웅이 되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자식이 의사가 되길 꿈꾸며 학교에 보내지만 그는 수업시간 내내 만화를 그릴 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러다 아버지와 부업하러 나간 장소에서 몸종인 소여(나미미)를 구하다 쫒기는 신세가 된다. 아버지와 옥서, 소여는 식당에 몸을 숨기는데 식당 요리사 겸 주인이 무려 '유가량'이다. 유가량은 학교에서 쫒겨난 옥서에게 요리를 가르치지만 옥서의 마음은 무공 연마에만 가있다. 

[가자왕]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대부분은 옥서에서 출발한다. 뒷 생각하지 않고 소여를 구하다가 아버지가 만신창이가 되고, 맡은 주방 일은 대충 해놓고 무술을 배우러 간다. 주인공의 이런 모습이 전혀 호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물론 모든 주인공이 꼭 선해야 하고 잘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는 지금 시각에서 보면 아주 짜증스러운 민폐 캐릭터로 주인공을 만들고 있다. 얘만 좀 안 나댔더라면 상황이 저리 꼬이지는 않았을텐데....계속 이 생각이 드는 거다. 


이 영화의 제일 큰 문제이면서 특이한 점은, 영화 시작하고 얼마 후에 포스터의 남자가 나와 무공을 뽑내는데 이 사람이 주인공이 아니란 점이다. 왜 주인공이 아닌 악당이 포스터에 크게 박히고 제목 '가자왕'까지 차지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 악당한테 서사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몇 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등장해 발차기를 뽑내고 괴성을 지르다 들어갈 뿐이다. 그나마 아버지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 눈에 뜨여서 그런지, 근친인가 란 느낌이 갈수록 강해서 보기에 점점 더 괴로울 뿐이었다. 게다가 계속해서 발차기를 특징으로 내세우려 하다보니 액션 구성이 단조롭다. 

그나마 이 영화를 살린 건 식당 사장이자 요리사로 나오는 '유가량'의 존재로 보인다. 유가량은 주인공 옥서의 사부가 되는데, 같은 무협 장르라서 그런지 이상하리만치 홍금보의 [패가자]가 떠올랐다. [패가자]의 주인공 원표도 옥서처럼 철이 없는데 (그래도 부잣집 도련님임) 그러다 사부 임정영을 만난다. 철이 없는 소년과 그를 끌어주는, 재야의 사부라는 존재가 상당히 유사하다고 느껴졌는데 [패가자]의 분위기가 처절하다면 [가자왕]은 코믹 액션이다. 그러니 발견한 유사한 점은 금새 사라져 버린다. 

유가량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가자왕]은 그의 등장 전까지 일어나는 짜증스러운 상황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준다.  저 주방장이 대가라는 사실을 영화 밖의 관객은 모두가 알기에 아직 진짜 액션씬, 한방이 남아있다는 기대를 계속 품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유가량이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진정으로 가자왕과 붙는 장면만으로 그 전까지의 짜증이 모두 해소되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유가량의 액션을 이렇게 다시 볼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가자왕]을 감상한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더불어 여기에 나미미의 미모도 한 몫 했다.

* [가자왕]의 무술지도가 원덕(元德). 칠소복 중 한 명인데, 최근에는 중국 드라마 [쌍세총비] 감독(특히 본인의 몸으로 혼신의 연기를 펼치는 연기지도)으로 유명하다. 

** 시나리오를 총 3인이 썼는데 그 중 한 명이 황병요. 사진을 찾아보니 영화에서 종종 본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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