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소걸아로 불리는 소찬의 자료를 찾아보면 위키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중국판 위키에서 찾은 소찬은, 취권(醉拳) 소찬(蘇燦) 속칭 소걸아(俗稱蘇乞兒)
원화평이 감독한 1978년 판 <취권>을 '다시' 봤다. 지금껏 취권을 본적 없다 여겼는데, 다시 보는 거였더라. 내가 어릴 때 본 영화가 맞았다. 다시 본 <취권>은 당시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게 당연하다. 성룡과 황정리의 멋진 대결에 간간히 등장하는 코믹한 요소에. 하지만 무엇보다 내 눈에 들어온 건 성룡의 사부로 등장하는 소걸아, 영화 속 소화자란 캐릭터다.
이건 거의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판타지의 실현 아닐까? 외양은 찌질하나 알고보니 절대고수가 한없이 철없는 나의 사부가 되어, 나는 그 사부에게 모든 지혜를 배우게 되고, 그 사부는 나를 너무나 아껴주고 옳은 길로 인도해주고...누구나 한번쯤 저런 사람을 내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생각을 일생에 한번 이상은 하지 않나?
그 지점을 <취권>이 정확하게 표현해낸다. 제자는 얼토당토 않은 이상한 훈련만 시키는 사부를 피해 도망가다가 아비를 모욕하는 악당에게 왕창 깨진 후 다시 사부에게 돌아온다. 그 순간 영화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이해와 화해를, 말 없이 슬쩍 몇 가지 행동으로 참 잘 표현한다. 그리고 관객 역시 이 둘의 관계에 동화된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저 사람이 설사 절대고수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순간 성룡이 되어 자신의 든든한 언덕이 되어줄 수 있는 사부의 옆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이 극에 달하는 장면은 스승과 제자가 서로 술을 주고 받으며 이백의 <장진주>를 읊을 때다. 사실 영화가 시작하고 소화자가 등장하면서, 이거 좀 심하게 이백과 동일시하려는 것 아닌가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 최고의 시인이자 얼마나 호통한 인간인지 민간에 이백 관련 설화가 끝도 없이 많은 존재. 죽은 게 아니라 달나라로 돌아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의 시인. 이백과 관련한 민간설화가 그리 많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백이 일반 대중에게 얼마나 전설적인 존재였는지를 증명한다. 이런 이백을 지나치게 상기시키는 의도로 설정된 인물이 아닌가, 그런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도 막상 소화자가 <장진주>를 시작하자 가슴이 울컥 하더라. 만약 그의 광증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월야독작>을 읊었겠지. 하지만 이 스승은 제자와 <장진주>를 술과 함께 한 구절씩 주고 받으며 읊는다. 그 순간 소걸아는 청말 존재했던 단순한 고수에서, 이백의 재림이 된다.
2010년 원화평은 다시 한 번 소걸아를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제목부터 <소걸아>다. 원화평이 오랫만에 메가폰을 잡았구나 했었는데 <취권>을 보니 당연하다 싶다. 그 외에 누가 적임자겠는가. 원화평이 주목하는 건, 왜 소걸아가 술꾼이 됐을까. 그는 술꾼 되기 이전의 소걸아와 그 이후의 소걸아를 함께 다루고 전반부의 무협공간은 후반부에 가면 엉망진창의 현실이 된다. 욕도 많이 먹은 영화이고 어느 부분이 그리 욕먹는지 충분히 동감하는 영화이지만....
그래도 요 몇 년 간 본 홍콩 무협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었다. 원화평이 대단한 점 - 나는 홍콩의 어떤 액션감독보다 원화평이 훌륭하다 본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다른 뛰어난 액션감독들이 인간이라면, 원화평은 신의 경지에 돌입했다고 본다 - 은 그가 소리까지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걸아>가 탁월했던 지점은 대단한 액션과 그걸 담아내는 카메라의 움직임, 그리고 소리. 아...정말이지 그 미세한 소리들! 무협에서 경험가능한 최대의 희열을 느끼게 해줬다.
"재밌긴 하지만 그 정도까진 아니잖아?"라는 선배들의 의견에 나는 열변을 토했던 적이 있다. 그건 <철마류> 때문이었다. 그때도 나는 원화평의 <철마류>가 최고였다. 여자주인공도 제일 예쁘고 아무리 다른 작품을 봐도 <철마류>만 못하다 느꼈다. 지금은 <소걸아>가 내게 그렇다. 나랑 원화평은 궁합이 잘맞나보다....란 생각이 든다.
덧. 중국 위키 찾아보니 주성치의 <무장원 소걸아>는 실제 소걸아와 상관없는 창작이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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