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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산책/화어(2000년 이후)

무협(武侠; Wu Xia, 2011)

by 주렁주렁™ 2011. 11. 22.
무협(武侠; Wu Xia, 2011)
감독 : 진가신
각본 : 임애화
출연 : 견자단, 금성무, 탕웨이, 왕우, 혜영홍, 이소염, 강무


감독 진가신이 무협이란 장르에 도전하며 '원경(遠境)에서 근경(近境)으로' 묘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멀리 있는 제3자, 무협이란 공간 밖 인물, 그러면서 이야기를 묘사하는 화자로 금성무가 등장한다. 이는 홍콩 무협 영화에 낯선(혹은 낯설지도 모르는) 대륙을 비롯한 외국 관객을 위한 것일수도 있고, 아니면 대륙이란 땅에 낯선 홍콩 관객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또 아니면 이 생소한 장르에 도전하는 진가신 자신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난 셋 다 해당된다고 보지만. 

낯선 공간에 탐정으로 등장한 금성무는 사건의 진위를 밝히느라 바쁘다. 그 진위는 무고한 생명을 구했다 칭송받는 마을의 촌부, 견자단이다. 금성무의 의심은 그가 진짜 정당방위였을까, 무술 고수가 아니었을까, 나아가 그의 정체가 악인은 아니었을까 이다. 여기서부터 영화가 삐그덕거린다. 왜? 바보가 아닌 이상 견자단이 고수인 걸 안다. 나아가 또 화어권 관객에게 견자단이란 얼마전 영웅 엽문을 연기한 선한 사람이다. 견자단이 바보가 아닌 이상 악당으로 등장할 리가 없다. 그러니 금성무의 의문이 깊어질수록 관객은 짜증이 난다. 적당히 빨리 액션씬으로 넘어갔음 싶은데, 진가신이 총애하는 금성무의 갈등은 깊어도 너무 깊다. 그에게 할애된 시간도 많고 캐릭터의 깊이도 많다. 그렇다고 금성무 역할에 대해 납득할 만한 적절한 설명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이 부분에서 영화가 늘어지는데 이게 거의 2/3 분량인지라 흥행이 안된 것도 이해가 간다. 

드디어 기다리던 혜영홍이 등장하고 지붕위에서 쫒고 쫒기는 장관이 펼쳐진다. 그리고 견자단의 자신의 팔을 자른다. <독비도>에 대한 오마쥬로도 볼 수 있지만, 재밌는 건 스스로 자른거다 거다. <신조협려>의 양과도, <독비도>의 왕우도, <서극의 칼>의 조문탁도 모두 황당하게 팔이 잘린다. 복수라는 사명에 일생을 받쳐도 시원찮을 판에 이들은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우연히 팔이 잘린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었던 거다. 삶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리 말 같지 않은 이유로 목숨같은 팔 하나가 잘려버린 검객이라니! 인생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또 얼마나 삶이란 비극적인지! 그러나 죽을 수도 없다. 왜냐면 이뤄야할 목표가 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남은 팔 하나로 삶을 연명해야할 뿐 아니라 두 팔을 가진 고수들보다 더 뛰어난 고수가 되어야한다. 그게 그들이 비장한 이유다. 복수할 대상이 있어서 비장한 게 아니다. 그렇게 살아야 하면서 복수까지 해야하니 비장했던 거다, 뭣보다 자의가 아니게 없어져버린 한 팔을 잊은 채로. 

그러나 진가신의 <무협>은 팔을 자르는 걸 '선택'한다. 여기에 개입된 보잘것없는 우연이란 없다. 견자단은 자신의 과거를 끊어내기 위해 팔을 자르는 것이다. 10년 만에 만난 조직의 누이가 "너 당룡이잖아!"라 해도 견자단은 "아니요, 저는 유금희입니다"라 부정한다. 그가 부정하는 건 과거 살인을 일삼던 '자신'뿐 아니라 조직에서 함께 살았던 '그들'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그토록 분노하던 혜영홍이 죽어가며 하는 마지막 말이 "너 당룡 맞잖아."인 것이다. 이제 영화는 단순히 과거 몸담았던 어두운 집단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벗어나려는 건 가족인 것이다. 자신에게 살인을 일삼도록 시켰던 가족, 아끼던 아들의 말을 죽여 말고기란 사실을 숨긴 채 그에게 먹이고는 "니가 제일 사랑하는 말을 먹었으니 이제 살면서 어떤 고난도 물리칠 수 있을거다"라고 강요하는 아버지가 있는 가족, 그게 견자단에게 있어 가족이며 그가 몸담았던 무협의 공간이기도 하다. 

가족을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견자단이 선택한 방법은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거다. 그는 탕웨이를 만나 아들 둘과 함께 새 가정을 꾸리고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옛 가족이 남아있다. 더구나 그 옛 가족은 흑사회 조폭들과는 다르게 배신자의 처단이 목적이 아니다. 옛  가족의 목적은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내 다시 예전의 완전했던 가족을 복원하는 거다. 그래서 혜영홍은 자신을 부정하는 견자단에 슬픈 거고, 사형 역시 견자단의 주검 앞에 그리 목놓아 우는 것이다. 

옛 드라마가 생각난다. 남편이 갑자기 하루 아침에 없어졌다. 십년 만에 찾아냈는데 남편은 기억상실증에 걸려 다른 여자와 이미 가정을 꾸린 상태다. 남아서 남편의 빈자리를 지키던, 무엇보다 시부모를 비롯한 시댁식구와 함께 살아가던 옛 가족에게 돌아가야 하는 걸까, 그렇다면 현재의 가족은? 물론 견자단은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했다. 그리고 또 다시 선택할 수 밖에 없다. 핏줄같은 존재들을 잘라내기 위해 팔 한쪽을 스스로 자르는 거다. 그를 데리러 왔던 사형은 그 의미를 알고는 떠날 수 밖에 없다. 태어날 때 부터 있던 가족이 필요없다는 데, 데리고 돌아가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그에게 말 고기를 먹인 아버지는 다르다. 가족을 통솔하는 가장, 옛 시대의 가장에게 있어 결원이 생긴 가족에는 새로운 가족을 채워넣어야 한다. 그게 아버지로 등장하는 왕우의 셈법이며 견자단의 아이를 뺏어가려는 이유이다. 
 
그리고, 드디어, 이제, 왕우가 등장했다. 목소리 만으로도 저리 내공을 뿜어내는 고수를 누가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결말은 당연하며 <무협>이 시종 내세우는 '사실적인 액션'에 가장 어울린다. 

진가신은 첫번째 무협영화인 <무협>으로 서극의 <서극의 칼>을 생각나게 만든다. <슬램덩크>에서 서태웅과 싸우는 정우성을 보며 마성지가 "이미 똑같은 수준이고 잘못하면 먹힌다"고 하던 말까지 생각날 정도다. 더불어 견자단 역시 액션설계에 있어, 어떤 경지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나는 견자단이 배우보다 액션설계 쪽에 주력했으면 좋겠다. 뭐 그런 액션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게 견자단 본인이니 어쩔 수 없는 거겠지만. 견자단의 액션 설계는 지금 홍콩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액션이다. 이제 내 관심사는 액션감독 견자단이 과연 원화평을 뛰어넘을 것인가? 이다. 

여기까지가 오전에 영화를 보고 쓴 리뷰였다. 글을 올렸다 바로 비공개로 돌리고 생각해본다.

앞서 <서극의 칼>이 생각났다고 했는데, 이는 '무(武)'라는 부분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이 성과는 진가신의 몫인가, 아니면 액션설계자인 견자단의 몫인가? 음...우문이려나. 넘어가기로 하고.

'협(俠)' 부분이 걸리는 거다. <서극의 칼>이 보여준 강호란 간단히 말해 '등가교환'의 세계였다. 이 세계와 대비되는 인물이면서 영화 속 화자인 소녀의 말은 이렇다. "강호라... 강호가 뭔지 난 모른다. 난 그저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이사다닌 수많은 지역을 알고 있을 뿐이다. 쉴새없이 이곳에서 저것으로 옮겨 다녔지만 아버지는 내게 이유를 설명해준 적이 없다. 아버지가 내게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는, 모두 거래와 관련된 것이었다. 나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행위는 거래의 일종이라 하셨다. "갖고 싶은 게 있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때로 팔고 싶은 게 있을 때에도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그렇지만 난 뭐가 갖고 팔고인지, 뭐가 대가인지, 전혀 구별할 수 없었다. " 

그렇다면 진가신은 무를 제외한 강호란 공간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가? <무협>의 협(俠)이란 일종의 가족, 그게 꼭 같은 핏줄이 아니더라도, 피처럼 끈끈한 관계들이다. 그건 앞서서도 계속 혜영홍의 예를 들어 설명했고. 그럼 왜 견자단을 제외한 옛 가족은 이리 끈적끈적한가? 배신자를 끝까지 추격한다는 점은 여타 현대 흑사회 소재 영화와 다를 바가 없는데, 이들은 이상하리만치 끈적끈적한 태도이다. 심하게 말하면 왜 끈적끈적하게 들러붙나? 이다. 또 하나, 견자단 때문에 죽음을 선택한 금성무의 태도도 의아하다. 만약 그가 보통의 장철 영화 속 캐릭터라면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행동은 충분히 이해가능하다. 그러나 진가신은 계속 장철 영화 속 협(俠)이란 개념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알아준 지기를 위해서는 목숨까지 내던질 수 있는 그 비장한 장철의 세계에 <무협>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왜? 마지막에 가면 금성무가 장철의 캐릭터처럼 견자단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나? 미안해서? 아님 얼마있음 죽을 목숨이라서? 설마..... 지기라서?
액션을 걷어내고 이야기 자체로만 보면 영화가 굉장히 이상하다. 

 덧. 
1. 이소염이 금성무 부인으로 특별출연한다. 대사가 어찌나 적은지....허이구야.
2. 강무도 특별출연. 
3. 금성무 눈이 정말 사슴같더라. 

덧덧.
<무협> 관련 글을 찾다가 재밌는 글을 발견해서 몇 구절만 옮겨본다. 원문은  여기 

"내가 궁금한 인물은 금성무이다. 그는 여러 방백을 내뱉으며 지식을 뽑내지만 영화 내용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는 법을 부르짖으며 과거 부모를 살해한 어린아이를 만난 일이나 장인까지 믿지 않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그렇게 남에게는 법대로 하자는 인간이) 견자단을 다치게 한 후, 마을 사람들한테 노래로 조롱받는 것 빼고는 왜 아무런 징벌을 받지 않는가? 탕웨이는 좋은 배우지만 <무협>에서는 낭비되고 있다. <무협>의 배경은 왜 하필 1917년인가? 오른손으로 사람을 죽이던 견자단은 왜 왼손을 자르는가?......"

1911년에 신해혁명이 일어났고, 17년이면 군벌 시기가 아닌가 싶은데....어쨌든 저런 촌락에서는 여전히 청나라 때로 살아가고 있었을 거고. 저 정도의 작은 부락이면 마을에 침입한 외부인 쯤 죽어도 자기네들 자체적으로 묻을 수 있었을텐데 왜 저딴 사건에 관리와 포쾌(탐정이라 간단히 내가 설명한 금성무)까지 행차한걸까? 여기가 가상의 공간, 무협 속 강호란 공간인 건 알겠는데 어쨌든 대단히 법이 지켜지는 곳처럼 보이더니, 왜 금성무는 엄한 사람 패놓고 안끌려가? 아니 밥 먹는 오른손 잘라야지, 인연을 확실히 끊을라면 많이 쓰는 손 잘라야지! 영화 보면서 그랬거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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