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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산책/화어(2000년 이후)

크로싱 헤네시 (月滿軒尼詩, Crossing Hennessey, 2010)

by 주렁주렁™ 2011. 6. 11.
크로싱 헤네시 (月滿軒尼詩, Crossing Hennessey, 2010)
각본, 감독 : 안서
주연 : 장학우, 탕웨이, 포기정, 이수현, 안지걸
配乐 褚振東
摄影 潘恒生(HKSC)
剪辑 鄺志良(HKSE)


어느날 41살의 장학우는 엄마와 이모까지 대동해 맞선 자리에 나가게 된다. 화통한 여장부이면서 잔소리가 철철 넘치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전자제품 대리점에서 일하는 장학우에게 자상한 이모가 그나마 따뜻한 곁을 내주는 사람이다. 맞선 자리에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 내외 밑에서 성장한 한참 어린 탕웨이가, 역시 외삼촌 내외와 함께 앉아있다. 둘 다 가족들 성화에 못이겨 억지로 나온 상황이긴 마찬가지. 탕웨이에게는 감옥에 있는 애인이 있고, 장학우에게는 10년 전 이별한 애인이 있다. 

<친밀>로 데뷰한 안서의 두번째 작품인 <크로싱 헤네시>는 전작과 많이 다른 작품이다. <친밀>은 영어제목인 <폐소공포증>에 걸맞게 대부분의 장면이 차, 사무실, 엘리베이터, 음식점 등에서 벌어진다. 영화 시간도 극히 짧을 뿐 아니라 주인공 임가흔과 정이건을 제외한 다른 배역들은 거의 엑스트라에 불과할 정도다. 즉 <친밀>은 최대한 주인공 둘에게만 집중한 영화였고, 그런 '축약'이 신선함과 함께 해석의 여지를 다양하게 열어주는 영화였다.

이에 반해 <크로싱 헤네시>는 등장인물이 우선 많다. 장학우와 탕웨이, 양쪽 다 각각 (전현)애인이 있으니 네 명이다. 이 관계만 설명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은데 장학우 엄마인 포기정과 포기정의 애인인 이수현, 여기에 장학우의 꿈에 자주 등장하는 죽은 아빠에, 나중엔 이모까지 연애담에 잠깐 가세한다. 게다가 로맨스만 다루질 않는다. 자느라 아버지의 임종도 못지킬 정도로 게으르면서,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될 자신이 없어 연애를 안한다는 장학우의 성장까지 담아낸다. 여기서 끝나냐고? 아니다. 안서는 홍콩도 담아내고 싶어 어쩔줄 모르는 것 같다. '봐봐, 내가 아는 홍콩은 달라, 이게 진짜 홍콩이라고, 이게 내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라고!' 때로는 관광엽서인가 싶을 정도로 거리를 담아내느라 영화는 분주하다.

인터뷰에서 안서는 영화에 잘 나오지 않는 홍콩 소시민의 삶을 다루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맞선 때 양가 가족까지 다 출동해 딤섬을 먹고, 두 남녀가 데이트 장소에서 주문하는 건 늘 그 유명한 홍콩의 에그 타르트이며, 이모가 이수현과 우연히 만나는 곳은 재래시장이고, 자주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찍은 씬이 등장한다. 또 홍콩 소시민이 젊은이들만이 아닌 것이 당연하니 공평하게 부모 세대의 로맨스도 다뤄야 하고, 홍콩 소시민이 줄창 로맨스만 해대는 사람들이 아니니 당연히 소원했던 부모 자식간의 관계회복도 그려야 한다. 덕분에 영화는 참 바쁘다. 

원래 5,6세 더 나이든 캐릭터였던 여주인공은 탕웨이의 가세로 나이가 낮아져 장학우와 거의 띠동갑 차이가 된다. 만약 초반 계획대로 30대 중반의 여주인공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 거다. 좀더 가족이나 세간의 이목에 덤덤한 면이 나이라는 걸로 설명될 수 있었을 테니까. 허나 안서는 탕웨이를 캐스팅했고, 캐릭터의 나이는 어려졌다. 능숙한 장사꾼일 정도로 능력이 있으나 감옥에 있는 남자를 계속 부양할 정도로 순수하며, 선을 긋기 위해 차 한 잔 같이 안먹으려 할 정도로 고집스럽지만 마음을 열었을 땐 활짝 웃을 줄 알고, 취미가 독서인 똑똑한 여자이다. 그런데다 나이까지 어린 여자가 41살인 장학우와 진짜 사랑에 빠져야한다.

그래서 안서는 이 캐릭터에 뭘 넣었느냐? 그래서 탕웨이는 안지걸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 늘 북경어를 쓴다. 멀쩡히 광동어를 잘 쓰다가 애인과 있을 땐 북경어로 대화하는 것이다. 그럼 당연히 이 둘은 대륙에서 건너온 이민자로 짐작되지 않겠는가. 애인이 감옥에 간 이유는 툭 하면 폭력을 휘둘러서이고, 탕웨이와 장학우가 교류하는 원인은 서로 독서라는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여자를 때리진 않지만 그리 폭력 외의 대화법을 알지 못하는 대륙 남자친구 옆에 있는 것보단 게으르고 나이까진 많아도 독서가 취미인 착한 홍콩남자가 낫다. 그런 폭력적인 애인을 뒷바라지 하는 건 진짜 홍콩남자를 못만나봤기 때문이며, 아직 홍콩인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들인지 모르는 대륙 여자라서 그런거다. <크로싱 헤네시>에서 탕웨이는 대륙 애인에게서 벗어나 홍콩 남자에게 귀화해야 하며, 홍콩 남자와 가정을 이뤄야 한다. 그래야 진짜 홍콩인이 될 수 있으니까. 왜? 그냥 내버려두기엔 착한 여자니까. 

툭하면 주변인에게 짜증을 부리며 가게를 운영하는 엄마 포기정은 애인인 이수현과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까지 순탄하지는 않았다. 이수현과 언니(이모)의 관계를 의심한 포기정이 사람들 앞에서 언니에게 "아들까지 뺏어가더니 이젠 남자까지 뺏어가냐!"는 폭언을 퍼붓는다. 그런 최악의 갈등에도 다시 화합하는 가족애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럼 왜 안서는 포기정이 입원한 병원 대기실에서 이모가 "밥 몇 번 해주고. 영화 보고 차 마신게 다다. 살면서 여지껏 데이트 한 번 못해봤던 나잖니. 언니인 내가 그러면 안되는 거였는데...."라 말하는 장면을 넣은건가? 연애 한 번 못해본 늙은 이모의 완전한 오해인가, 아니면 동생 때문에 애써 피어나던 감정을 정리한 건가? 이 모든 것들이 별다른 설명없이 갑자기 꽃다발을 가지고 온 이수현의 등장으로 해결되며, 그 다음은 결혼식이다. 이게 진짜 가족이라는 것이다. 

로맨스였다가 하세편이었다가 가족드라마였다가 성장드라마였다가 홍콩관광 다큐멘타리였다가...감독의 욕심이 과하다. 주연인 장학우와 탕웨이 뿐 아니라 조연인 이수현과 특히 누구보다도 포기정의 연기가 돋보이긴 했지만, 탕웨이가 참 아름답지만, 안서에게 너무나 실망한 영화다. <색, 계> 이후 탕웨이의 첫 출연 영화이면서 여성감독과의 작업이라는 게 홍보 포인트였고, 두 사람의 인터뷰도 개봉 당시 웹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 안서는 처음엔 대륙 배우가 홍콩정서를 표현할 수 있을까 싶어 미심쩍었지만 광동어도 순식간에 마스터해 온 적역배우라 극찬했지만, 영화를 보면 안서가 몰두하는 건 장학우(와 포기정)이고, 탕웨이(와 이수현)에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장학우에 지나치게 몰두했기에 다른 게 안보였나 싶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자신이 잘 모르는 캐릭터에게는 최소한의 것만 부여하고 미뤄두는 느낌이 더 강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네가 홍콩인이 아니라 못믿겠다는 느낌. 그래서 안서에게 굉장히 실망했고, 이 영화에 각본상을 준 홍콩영화평론가협회에 대한 신뢰도도 대폭 하락했다. 

덧. 제일 나쁜 건 음악. 시도때도 없이 나오고 무엇보다 과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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