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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산책/화어(2000년 이후)

여몽(如夢; Like a Dream, 2009)

by 주렁주렁™ 2010. 10. 7.
여몽(如夢; Like a Dream, 2009)  
감독 : 나탁요
제작 : 방영정
협력제작 : 장애가
각본 : 방영정, 나탁요 
미술 : 계종문
음악 : 두독지 杜篤之
출연 : 오언조, 원천




*중국어 자막으로 봤기 때문에 중간중간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몽>은 오랫동안 길렀던 고양이의 죽음을 겪는 오언조로 시작한다. 인종은 아시아인이나 뉴요커인 오언조는 IT 회사에서 일하는데(프로그래머가 아닐까 싶다), 고양이의 죽음으로 불면증을 겪으면서 의사에게 수면제를 처방받게 된다. 약을 먹으면서 그는 날마다 꿈을 꾸게 되고 꿈속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실연의 상처를 안고 있는꿈속의 여자와 오언조는점점 꿈속에서 서로에게 빠져들게 되면서 이제 오언조는 꿈을 위해 모든 일을 뒷전으로 팽개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보다못한 회사에서 그에게 휴가를 줘 중국으로 보내고 그는 항주에서 꿈속의 여자를 실제로 만나게 된다. 

우선 초반부 꿈 장면이 정말 좋다. 굉장히 우아하면서 유려하고 무엇보다 맘에 드는 이미지의 연속이다. 그런데 중국으로 오언조가 가게 되면서 난 영화가 참 짜증이 나더라. 왜 이렇게까지 짜증이 나는걸까, 며칠 곰곰히 생각해봤다. 

1. 오언조가 실제로 찾아낸 꿈속의 여인 원천은 꿈에서처럼 아름답고 상처받은 여자가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나가고 싶어하는 시골 촌뜨기다. 마치 살면서 상처라고는 받아본 적 없는 사람처럼 하하호호 하며 심하게 표현하면 넋나간 년처럼 나오는데 이런 캐릭터는 예전 막 뜨기 시작하면서 한창 영화 많이 찍던 서기의 전매특허였다. 딱 그 수준이다. 현실의 여자는. 눈치도 없고 배려심도 없고 이 남자를 잡아서 뉴욕으로 같이 갔음 좋겠다는 생각뿐이고. 물론 나중에는 사랑하는 것같고 막 울어대고 하는데, 염병. 

2. 원천은 영화에서 대륙 촌뜨기다. 항주와 상해 장면은 그 장소만으로도 그림이 된다. 나는 이게 참 거슬렸다. 만약 이 영화가 똑같은 내용을 가지고 뉴요커인 동양인이 한국에 와서 음, 서울이나 부산 정도의 대도시는 아니고 청주? 정도의 약간 작은 도시에 가서 여자를 찾았더니 그 여자는 눈치라고는 전혀 없고 이 남자 따라서 미국에 가고 싶어하고 거짓말을 하는건지 아님 머릿속에 뭐가 든건지 모르겠다면? 뭐 내가 오버일 수도 있다. 촌뜨기 원천이나 꿈속의 원천이나 다 대륙여자니까. 그리고 꼭 모든 걸 긍정적으로 묘사해야 하는 의무는 없는 거니까. 그러나 왜 이렇게 얄팍하냐는 거지. 게다가 꿈 장면은 몇 분 안되니까 이 얄팍한 캐릭터가 영화 대부분을 끌어가는데, 좀더 입체적으로 만들수는 없었던걸까? 

3. 오언조가 동양인이지. 그런데 이거를 서양인으로 바꿔보자. 
기계문명에 선진화된 서양 남자가 세파에 시달리다 동양적인 것을 찾으러 홀홀단신 동양을 방문, 거기서 백치미 동양인 여자를 만나 자신의 공허함을 깨닫고 세상과 화해하게 된다. 무척 도식화시킨 압축이란 거 나도 아는데, 좀 비슷하지 않나? 하루키나 윤대녕 초기작에서 보이던, 세파에 시달린 남자가 고향이나 혹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나 거기서 여자들을 만나고 그 여자들은 각기 이 남자 내면의 한 부분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 만남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진정한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뭐 그런 내용들. 

딱 이런 느낌이었다. 꿈과 현실을 각기 내보이며 각각 상징성을 부여하고, 이 여자가 과연 꿈속의 그 여자일까란 미스테리도 약간 가미해서, 게다가 로맨스로 해석될 여지까지 주는 건데. 
모든 게 얄팍했다. 특히 상징들. 아...이 정도 가지고 대단한 영화인 척 하면 안되지. 
뭐 대단한 영화일 거라고 미리 평가하고 기대했던 내가 문제였겠지만. 

<반금련>에서도 느꼈던 건데 여전히 나탁요는 이미지에 탁월하다. 그리고 여전히 스토리는 구멍이 있고 인물 묘사도 부족하다. 최근 홍콩이나 대만영화 크레딧에서 자주 이름을 발견할 수 있는 두독지 - 음악이 너무 좋아서 찾아보면 요즘 다 이사람이다 - 의 음악이 그 때깔 좋은 이미지와 어우러져 힘을 발휘하고 있긴한데....딱 거기까지다. 

상당히 실망스러운 작품이었다. 

덧. 이 역할은 주신의 전매특허 역할 아닌가? 1인 2역에 정체불명의 여자. 주신이 했다면 어땠을까? 덧없는 가정이지만, 최소한 이것보다는 나았겠지. 

덧2. 오언조가 제작에까지 참여한 걸 보면 그가 기대를 크게 한 작품같다. 금마장에도 이 역할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나왔고. 엄청 예쁘게 등장한다. 잠못자서 부시시한 모습까지 예쁘더라. 오언조는 말쑥한 역할 보다는 이렇게 한군데 나사 빠진 역할을 연기할 때가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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